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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 명절 추석에 대해 알아보자.

by 또바기벗 2023.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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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명절 추석에 지내는 차례상 >

 이번주는 한국의 큰 명절 중 하나인 추석이 있다. 벌써부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두근반 새근반이다. 그리운 가족들 그리고 친지들을 볼 생각에 더 기대감이 높다. 이러한 명절인 추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가배·가위·한가위·중추절 등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명절이다. 추석은 1년 중 가장 큰 보름달을 맞이하는 달의 명절이다. 농경민족으로서 수확의 계절을 맞이하여 풍년을 축하·감사하며 햇곡식으로 밥·떡·술을 빚어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여 그 은혜에 보답했다. 음식을 서로 교환하며 후한 인심을 나누었으며 농사를 마감한 한가한 시기에 다음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소놀이·거북놀이·줄다리기·씨름·활쏘기 등 세시풍속을 함께하며 공동체의식을 다졌다. 문헌에 의하면 삼국시대 초기부터 즐기던 명절로서 그 연원이 깊다.

추석의 역사 / 유래

추석의 유래 : 가을을 축하한다는 원래 의미에 더해 수확, 발해 승리를 축하하는 의미를 더한다.추석이 언제부터 행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신라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이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란 '가운데'를 나타내는데, '가위'란 신라 시대 때 여인들이 실을 짜던 길쌈을 '가배(嘉排)'라 부르다가 이 말이 변해서 된 것이다. 추석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신라의 제3대 왕 유리 이사금 때 벌인 적마경기(績麻競技)에서 비롯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다. 왕이 6부를 정하고 나서 이를 반씩 둘로 나누어 왕의 딸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部) 안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무리를 나누어 편을 짜서 가을 음력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큰 부(大部)의 뜰에 모여서 길쌈을 하도록 하여 오후 10시경에 그치는데, 음력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적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진 편은 술과 음식을 차려서 이긴 편에게 사례하였다. 이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모두 행하는데 그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이때 진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며 탄식해 말하기를 "회소 회소"라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아름다워 후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서 노래를 지어 회소곡이라 이름 하였다. 嘉俳의 당시 발음이 ‘가배’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로부터 중세 한국어의 ‘ᄀᆞᄇᆡ’와 지금의 ‘(한)가위’라는 이름이 온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의견은 대략 10월경에 벌어지는 동명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추석의 역사 : 추석의 유래가 '가배(嘉俳)'라는 이름으로 1세기까지 기원이 거슬러 간다는 이야기다. "가배"라는 이름은 현재까지도 가윗날, 한가위 등에서의 "가위"로 남아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국속지금행지(國俗至今行之)', 즉 추석의 길쌈놀이가 당대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경주에서는 '두레길쌈'이라는 제도가 실제로 조선 초까지 전해져 왔다. 자료 이후 중국식 중추절의 영향 또한 많이 받았다. 고대 일본의 승려 엔닌이 저술한 《입당구법순례행기》 중 839년 8월 15일 기사에도 당시 신라인들이 즐겼던 추석 풍습이 기록되어 있다. 해당 문헌에 따르면 추석은 신라가 고구려와 싸워 승리를 거둔 날을 명절로 삼은 것에서 유래했으며, 온갖 음식을 마련하고 가무와 음악을 연주하며 3일 밤낮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직접 제사를 지내는 국가 행사 중 하나였다. 1438년에는 추석 날에 사형 집행이 금지되었으며, 1531년에는 병을 핑계로 추석제에 나오지 않은 벼슬아치들이 파직되기도 했을 정도로 상당히 귀중하게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1497년에는 추석 제사 도중 발을 헛디뎌 독을 깨뜨린 관리가 의금부에 하옥되어 죄를 신문받기도 하였다. 공휴일로 처음 지정된 1949년에는 추석 당일만 휴일이었다가, 1986년에 추석 다음 날(음력 8월 16일)이 공휴일에 포함되었고 1989년부터 추석 전날(음력 8월 14일)까지 휴일로 지정되면서 3일 연휴가 만들어졌다. 추석이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지정되어서 월요일과 금요일에 휴직하여 황금연휴가 된 사례도 있으며, 여기에 2013년 대체 휴일 제도 시행령에 따라 3일 연휴 중 하루라도 일요일 또는 공휴일과 겹칠 경우 공식 연휴 다음 날인 음력 8월 17일을 대체 휴일로 쉬게 되었고 2014년 추석 전날인 9월 7일이 일요일과 겹치면서 추석 다음 다음 날인 9월 10일이 수요일이 첫 대체 휴일로 지정되었다. 2015년에도 추석 당일이 일요일이라 음력 8월 17일까지 휴일이 되었다.

추석에 즐겨하는 놀이

 추석 무렵은 좋은 계절이고 풍요를 자랑하는 때이기에 마음이 유쾌하고 한가해서 여러 놀이를 한다. 사람들이 모여 농악을 치고 노래와 춤이 어울리게 된다. 농군들이 모여 그 해에 마을에서 농사를 잘 지은 집이나 부잣집을 찾아가면 술과 음식으로 일행을 대접한다. 먹을 것이 풍족하니 인심도 좋아서 기꺼이 대접을 한다. 이렇게 서너 집을 다니고 나면 하루가 간다.
농군들이 마을을 돌면서 놀 때에 소놀이 · 거북놀이를 하게 된다. 소놀이는 두 사람이 멍석을 쓰고 앞사람은 방망이를 두개 들어 뿔로 삼고, 뒷사람은 새끼줄을 늘어뜨려 꼬리를 삼아 농악대를 앞세우고 이집저집 찾아다닌다. 일행을 맞이하는 집에서는 많은 음식을 차려 대접한다. 마당에서 술상을 벌이고 풍물을 치고 춤을 추면서 한때를 즐긴다. 이때에 소도 춤추는 시늉을 하면 사람들은 웃고 놀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소놀이를 할 때 마을에서 일을 잘하는 머슴을 뽑아 농우주1에 태워서 마을을 누비고 다니는 일도 있다. 여름 동안 수고가 많았으므로 위로하는 것이고 영광을 안겨주는 일이 된다. 상머슴으로 뽑히면 일을 잘하였기 때문에 다음 해에 많은 새경주 2를 받게 된다. 거북놀이는 두 사람이 둥근 멍석을 쓰고 앉아 머리와 꼬리를 만들어 거북이시늉을 하고 느린 걸음으로 움직인다. 사람들이 거북이를 앞세우고 큰 집을 찾아가 “바다에서 거북이가 왔는데 목이 마르다.”면서 음식을 청하고 들어가면 주인은 음식을 내어 일행을 대접한다. 놀이는 소놀이와 비슷하다. 한 집에서 잘 먹고 난 다음 다른 집을 찾아간다. 이때에 얻은 음식을 가난해서 추석음식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일도 있어 협동과 공생(共生)의 의식을 보이기도 한다. 소놀이와 거북놀이는 충청도 · 경기도 등에 전승되고 있다.
또, 마을사람들은 모여 줄다리기도 하였다. 한 마을에서 편을 가르거나 몇 개 마을이 편을 짜서 하거나 또는 남녀로 편을 갈라서 하는 일도 있다. 줄의 크기나 편의 규모는 일정하지 않고 많을 때에는 수천 명에서 작을 때에는 수십 명이 모여서 하는 수가 있으나 집단을 이루며, 줄의 큰 것은 줄 위에 올라앉으면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큰 경우도 있다. 큰 줄을 만들려면 볏짚이 많이 필요하므로 각 집에서 짚단을 제공하고 수천 단을 들여서 만드는 일도 있다. 만든 줄을 줄다리기 장소로 옮길 때에 너무 커서 들고 가지 못하면 근래에는 트럭에 싣고 가거나 끌고 가는 일도 있다. 줄다리기의 승부는 한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농경의례의 하나로 여겨, 암줄이 이기면 풍년이 드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줄다리기는 상원에 주로 하지만, 추석 때와 단옷날에 하는 곳도 있다.

힘깨나 쓰는 사람들은 씨름판을 벌이는데, 어린이들은 아기씨름을 하고 장정들은 어른씨름을 한다. 잔디밭이나 백사장에서 구경꾼에 둘러싸여 힘과 슬기를 겨루게 된다. 씨름에서 마지막 승리한 사람에게는 장사라 부르고 상으로 광목, 쌀 한 가마, 또는 송아지를 준다.
궁사(弓士)들은 활쏘기도 한다. 사정(射亭)에 모여 일정한 거리에 과녁을 만들어놓고 활을 쏘아 과녁을 맞추는 경기이다. 활쏘기는 상무정신을 기르게 하고 심신을 단련하게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마음을 통일시키지 못하면 과녁을 맞힐 수가 없기에 호흡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쏘아야 한다. 여러 궁사들이 줄을 서서 차례로 쏘아 과녁에 맞으면 ‘지화자’ 노래를 부르면서 격려하고 축하를 해준다.
전라남도 서남해안지방에서는 부녀자들이 강강술래놀이를 즐긴다. 추석날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달이 솟을 무렵 젊은 부녀자들이 넓은 마당이나 잔디밭에 모여 손과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뛰고 춤춘다. 노래는 처음에 진양조로 느리게 부르다가 차츰 빨라져서 나중에는 마구 뛰게 된다. 노래 장단에 따라 춤동작이 정하여진다. 만월 아래 추석빔으로 곱게 단장한 젊은 여인들의 원무(圓舞)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강강술래놀이는 원무를 하는 외에 여러 놀이가 첨가되어 다양하게 전개되는 수도 있다. 곧, 손을 잡고 일렬로 서서 맨 앞에 있는 사람이 다음 사람의 팔 밑으로 꿰어 가는 고사리꺾기가 있다. 또 일렬로 서서 맨 끝에 있는 사람이 맨 앞에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면서 덕석(멍석)을 말 듯이 몇 번이고 도는 대로 한 덩어리로 뭉치게 되는 덕석몰이, 원을 그리면서 춤추는 중앙에 한 사람 혹은 두세 사람이 뛰어들어가 두 손을 내두르며 뛰고 춤추는 남생이놀이,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마주서서 문을 만들면 다른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문 밑을 빠져나가는 문 열기 등 여러 가지 놀이가 행해진다. 놀이방법이 변함에 따라 불려지는 노래의 가사도 달라진다. 이 놀이는 일설에는 이순신(李舜臣)이 창안하였다고 하나, 원시시대에 1년 중에서 가장 밝은 만월을 맞이하여 놀이하던 원무를 이순신이 의병술(擬兵術)로 채택해서 임진왜란 때에 왜군을 격퇴하는 데 썼던 것으로 해석된다.
추석명절에는 옛날의 서당에서는 훈장이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 집으로 가기 때문에 공부를 며칠 쉬게 된다. 모처럼 글공부에서 해방된 학동들은 모여서 놀이를 하는데, 그 중에는 가마싸움과 원놀이가 있다. 학동들이 모여 나무로 가마를 만들어 바퀴를 달고 이웃 마을의 서당과 경기를 한다. 서로 가마를 가지고 넓은 마당에 모여 가마를 끌고 뛰어나와 상대편 가마와 부닥치게 한다. 몇 번을 되풀이하면 가마가 망가지게 되는데, 먼저 망가진 편이 지고 아무리 부닥쳐도 가마가 성하면 이기게 된다. 평상시에 앉아서 글만 읽던 학동들에 있어서는 활달한 놀이였다.

원놀이 역시 훈장이 없는 사이에 학동들에 의해서 행해진다. 글을 잘하고 오래 배웠으며 재치 있는 사람을 뽑아 원님으로 하고, 학동 중에서 소송을 하는 사람과 소송을 당하는 사람으로 나누어 원님이 판관이 되어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는 놀이니 오늘날의 모의재판과 같은 것이다. 옛날에는 과거에 급제해서 관원이 되면 판관으로서 민원을 처리하고 백성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사리를 따져서 정(正)과 사(邪)를 구분할 줄을 알아야 한다. 판관의 예행연습을 원놀이에서 미리 하였던 것이다. 소송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여 판관이 좀처럼 판결하기 어렵도록 한다. 그러나 가부간에 판관으로서는 판결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지혜를 짜내어 판단을 하여야 하였다. 유식한 문자를 쓰고 고사(故事)를 예로 들고 사실(史實)을 제시하여 누구든 납득할 수 있는 명판결을 해서 후세에 일화를 남긴 민담(民譚)도 전래되고 있다. 원놀이는 서당의 학동으로서는 품위 있고 학술연마도 되며 지혜를 연마하는 알맞은 놀이였다.
남도지방에서는 닭싸움과 소싸움을 즐기는 일도 있었다. 싸움을 잘하는 수탉을 길러서 싸움을 시키는데, 수탉의 힘이 세 지라고 고기를 먹이는 일도 있다. 닭이 싸울 때는 부리로 상대 닭을 찍고 물고 늘어지는데, 볏에 유혈이 낭자한데도 지지 않으려고 전력을 다한다. 서로 찍으려고 몸을 부닥치고 높이 뛰어서 상대편 볏을 노린다. 닭싸움에 지면 그집 마당에 놀러 가지도 못하고 암탉도 빼앗기기 때문에 사투를 한다. 닭싸움을 구경하며 즐기기도 하고 때로는 내기를 하는 일도 있다. 소싸움은 넓고 튼튼한 우리를 만들고 황소의 고삐를 풀어 두 마리를 넣어두면 싸움이 시작된다. 서로 노려보다가 앞발로 땅을 긁어 흙을 파헤치면 성낸 표시가 되고, 서로 머리를 대고 비비고 뿔로 받고 밀치고 한다. 뒤로 물러섰다가 부닥치는 소리가 “쿵!” 하고 크게 나서 힘과 힘의 대결임을 알 수가 있어 장관을 이룬다. 힘과 끈기와 투지의 대결로 한없이 밀리거나 뿔로 심하게 받혀서 부상을 하면 도망치는데, 하나가 도망하면 승부가 난다. 소싸움도 좋은 구경거리가 되는 한편 내기를 하는 일도 있다.
농촌의 소년들 사이에는 콩서리를 하는 일도 있다. 콩을 통째로 꺾어다 불을 피운 속에 넣어두었다가 익으면 꺼내어 먹는데 맛이 별미이다. 밭 콩보다는 논두렁 콩이 더 맛이 있어 초가을에 흔히 한다.
제주도에서는 조리희(照里戱)가 있었다고 『동국세시기』에 전한다. 남녀가 모여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면서 놀았으며, 패를 짜고 큰 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하였다. 그러다가 줄이 중간에 끊어지면 모두 주저앉게 되어 구경하는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고 한다. 한편, 그네를 뛰고 닭잡기 놀이(捕鷄之戱)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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