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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광지4

경희궁 내 건축물의 역사와 구조 2 이번에는 경희궁 내 건축물인 자정전과 태령전에 대해 알아보겠다. 자정전은 경희궁의 편전이다. 편전은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정무를 보고 나랏일을 의논하는 곳이다. 경희궁 정전 숭정전의 바로 북쪽 뒤편에 있다. '자정(資政)' 뜻은 '정사(政)를 돕는다(資)'이다. 그리고 태령전은 경희궁에 있는 어진 봉안소, 즉 진전(眞殿)이다. 자정전의 서쪽에 있다. 정조는 《경희궁지》에서 태령전을 “자정전 서쪽에 있으며 임금님의 어진을 봉안하는 곳이다.”라고 소개했다. 경희궁 내 건축물 자정전의 역사와 구조 자정전의 역사 : 1620년(광해군 12년) 경희궁 창건 때 지었다. 편전으로 처음 사용한 시기는 1624년(인조 2년)부터이다. 창덕궁과 창경궁이 불타자 인조가 경희궁을 사용하면서 그때 비로소 제 기능을 하기 시작.. 2023. 8. 18.
덕수궁의 서양식 건축물의 역사와 구조[3-2] 이번 글에서는 덕수궁 내 서양식 건축물인 중명전, 돈덕전을 알아보겠다. 중명전(重明殿)은 덕수궁에 딸린 서양식 전각이다. 원래의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으나,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 화재 이후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중명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05년 11월 18일 새벽,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중명(重眀)' 뜻은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는다' 또는 '거듭하여 밝다'이다. 《주역(周易)》의 이괘(離卦)에서 따온 이름이다. 다만, 상술했듯 이곳에서 망국을 알리는 을사조약을 체결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씁쓸함을 느끼게 하는 이름이다. 발음이 비슷한 준명당과 헷갈려하여 준명전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특이하게 '명'자를 흔히 '밝을 명' 자로.. 2023. 7. 1.
서울의 궁궐 덕수궁의 역사 [2] 이전 글에서 덕수궁의 역사 중 조선 초기 ~ 법궁 시기까지 알아봤다면 이번 글에서는 화재 및 덕수궁 시기, 일제강점기 시기, 광복 그 이후의 시기에 대해 알아보겠다. 덕수궁 역사 중 화재 및 덕수궁 시기 국가의 재정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증축을 거듭한 덕수궁이었지만, 1904년 4월 14일 밤 10시경에 영선사(營繕司)에서 함녕전의 온돌을 수리하던 중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바람이 거센 까닭에 화재는 삽시간에 주변의 건물로 번지며 궁의 중심부를 집어삼켰다. 이때 정전인 중화전뿐 아니라 가장 오래된 건물인 즉조당과 석어당, 신주(神主)를 모셨던 경효전과 어진(御眞)·예진(睿眞)을 봉안한 흠문각(欽文閣)이 모두 소실되었다. 특히 고종은 즉조당을 두고 선조의 시어소 시절부터 전해져 온 것으로 서까래 하.. 2023. 6. 17.
창경궁 외조의 편전 권역 내 건축물의 역사와 구조 창경궁 외조의 편전 권역 내 건축물에는 문정전과 숭문당이 있다. 문정전은 1483년(성종 14) 옛 수강궁 자리에 창경궁을 조성할 때, 왕이 공식적으로 신하를 만나 정사를 논하는 편전으로 건립된 건물이다. 건물 조성이 완료된 1484년(성종 15)에 서저정이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과 함께 문정전의 이름을 지어 올렸다. 창경궁은 대비들을 모시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궁궐의 규모가 비교적 작으며 격식을 갖추지 못한 부분이 있다. 특히 궁궐의 정문인 홍화문과 정전인 명정전을 잇는 축이 동서 방향으로 형성되어 동향을 하고 있는 반면, 정전과 맞닿은 편전인 문정전은 남향으로 축을 달리하고 있다. 원래 편전으로 건립되었다고 하나 실제 편전으로 사용된 기간은 매우 짧고, 조선후기 계속해서 혼전이 설치되어 ..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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