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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지

서울 가을 단풍 명소 - 북촌 한옥 마을

by 또바기벗 2023.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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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촌 한옥 마을 >

 북촌 한옥마을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가회동과 삼청동 내에 위치한 한옥마을이다. 지리상으로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의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왕조의 두 궁궐 사이에 위치한 이 지역은 예로부터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의미로 ‘북촌’이라 불리었으며, 현재의 가회동, 삼청동, 원서동, 재동, 계동 일대에 해당한다. 많은 사적과 문화재, 민속자료가 있어 도심 속의 박물관이라 불리기도 한다. 경복궁과 마주하고 있는 삼청동길 주변에는 많은 갤러리가 늘어서 있고, 화동길을 비롯한 곳에서는 각종 먹거리와 특색 있는 카페를 접할 수 있다. 또한 원서동에는 전통 기능의 보유자 및 예술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다세대가구 주택이 급속하게 들어서며 많은 수의 한옥이 사라졌지만, 현재까지 양호한 상태의 한옥이 군집을 이룬 채 일부 지역에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가회동 11번지, 31번지, 33번지 일대는 대표적인 한옥 밀집 지역이다.
북촌은 북악과 응봉을 잇는 산줄기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어 지리적 환경이 뛰어났기 때문에 예로부터 권문세족의 주거지로 자리매김해 왔다. 1906년 호적자료상의 북촌의 인구 10,241명(1,932호)을 호주의 신분에 따라 구분했을 때 양반과 관료가 43.6%를 차지한다. 이를 통해 근대에도 상류층이 많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북촌 한옥 마을의 유래와 역사

 서울 북쪽에 위치한 한옥동네라는 뜻으로 조선왕조 때부터 왕족, 양반, 관료 출신들이 살았던 고급 가옥이 대부분이라 하여서 일각에서는 '양반촌', '양반 동네'라고도 불렸다. 일제강점기 때 한옥이 일부 증, 개축되고 1992년 가회동 한옥보존지구에서 해제되어 한옥 이외에도 일반 건물도 들어섰다. 특히 원서동은 업자들이 유혹해 빠르게 빌라가 들어서 이전의 풍경을 잃었다. 2001년 서울시가 '북촌 가꾸기 사업'을 진행하여 한옥과 주변 경관을 개선해 2009년 유네스코 아태문화유산상 우수상을 받았다. 한국 최초의 디벨로퍼라 불리는 부동산개발업자 정세권이 조성한 한옥대단지이다. 경상남도 고성군 출신 정세권은 1919년에 상경한 뒤 건축 사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서울(경성부)은 급팽창하고 있었다. 지방 빈농의 유입도 급증하고, 일본인의 서울 이주도 급증했다. 인구 증가는 주택난을 불렀다. 당시 청계천 남쪽에는 일본인들이 주로 모여 살았는데, 일본인들이 증가하자 청계천 북쪽으로까지 확장을 노렸고, 조선총독부는 정부기관을 국공유지에 먼저 들인 후 일본인을 진출시키는 방식으로 청계천 북쪽으로 일본인 거주지 확장을 주도하였다. 당시 북촌은 일제 침략으로 어려워진 권세가들이 내놓은 집들이 많았다. 정세권은 조선인의 영역을 지키고자 조선인 건설업자들과 함께 민간주택 건설 사업에 진출하였다. 권세가, 양반들이 소유하였던 넓은 토지나 택지를 쪼개 여러 채의 작은 규모의 한옥을 대량공급함으로써 조선인 주거지역을 확보하고 고유 주거방식을 잃어버리는 것을 막았다. 이러한 한옥 집단지구에 공급된 한옥은 전통한옥의 구조를 ㅁ자 안에 집약하고, 부엌과 화장실을 신식으로 개선하는 등 근대적인 편리함과 생활약식을 반영한 도시한옥(개량한옥)이었다.
소규모 도시한옥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상대적으로 낮은 집값이 한몫했다. 정세권의 회사인 건양사는 한 해 평균 300채의 한옥을 공급했는데 1920년대 한성(서울)의 연간 주택공급량은 1,700채 정도였고, 정세권은 그 중 20%를 담당했다. 경성의 '건축왕'이라 불렸다. 북촌 한옥의 대부분은 정세권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세권은 경성의 한옥단지 개발로 10년도 안 돼 부동산 재벌이 됐다. 그렇다고 돈 버는 데만 집착하지는 않았다. 민족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23년 물산장려운동이 일어나자 정세권은 경성지회 설립을 주도했다. 좌우 독립운동 연합체인 신간회 운동에도 참여해 재정 담당을 맡아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어학회[1]의 최대 후원자이기도 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고문을 받기도 하였다. 해방 후에도 조선어학회의 우리말 사전 편찬사업 후원을 이어갔다.

북촌 한옥 마을의 문화 유산

 북촌 지역의 문화재로는 사적 5곳(중앙고 본관, 서관, 동관, 윤보선가, 관상감 관천대), 서울시 민속자료 4곳(김홍기 가옥, 백홍범 가옥, 한씨 가옥, 백인제 가옥), 유형문화재 3곳(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동십자각, 번사창), 문화재 자료 2곳(이준구 가옥, 삼청동문), 천연기념물 3곳(백송, 등나무, 측백나무) 그리고 조선시대부터 형성되었던 옛길과 물길(삼청동천의 흔적)이 있으며, 북촌에는 1900년 이후부터 급속하게 형성된 한옥군이 분포해 있다. 1750년의 도성도, 1892년의 수선전도, 1927년의 경성시가도, 그리고 2000년 이후 오늘날의 지도를 살펴보면 계동길, 북촌로, 삼청로, 창덕궁길 등이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많은 역사유적들과 더불어 중요한 자원으로 평가된다. 최근에는 건축가, 미술가들이 북촌의 역사와 함께하고자 북촌 내부에 작업실과 사무실 등을 개설하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북촌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드높이는 역할을 한다.

북촌 한옥 마을 8경

 서울시는 북촌을 서울의 대표 문화관광지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북촌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지점 8곳을 지정해 방문객을 위한 사진촬영대를 설치하였다. 북촌의 중심 관광자원이라 할 수 있는 한옥 경관 그리고 한옥이 중심을 이루는 골목길이 주로 선정되어 있다. 북촌 8경은 북촌 한옥마을에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문화재와 한옥들을 선으로 이어주고 있다. 북촌 1경은 창덕궁 전경으로, 돌담 너머로 창덕궁의 전경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이다. 북촌문화센터에서 나와 북촌 길 언덕을 오르면 나오는 장소이다. 북촌 3경은 북촌로 12길 일대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여러 공방이 자리하고 있다. 북촌 4경은 북촌로 11길 언덕으로, 북촌로 11길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수많은 기와지붕과 함께 북촌 꼭대기의 이준구 가옥까지 조망할 수 있다. 북촌 5경은 가회동 골목길(내림)로, 밀집된 한옥의 경관과 흔적이 가장 선명히 남아 있는 곳이다. 적극적인 한옥 지원 사업으로 한옥이 잘 보전되어 있다. 북촌 6경은 가회동 골목길(오름)로, 한옥 지붕 사이로 펼쳐지는 서울의 전경을 볼 수 있다. 북촌 7경은 가회동 31번지로, 고즈넉한 분위기의 소박한 골목이며 주민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북촌 8경은 삼청동 돌층계길로, 북촌로 5 나길에서 삼청로로 내려가는 돌계단길이다. 커다란 암반 하나를 통째로 조각한 독특한 조경을 볼 수 있다.

 

 북촌 한옥 마을을 가을 단풍 명소라고 하는 이유는 아마도 북촌 마을에서 서울을 바라봤을 때 보이는 경치 때문인 것 같다. 물론 한옥과 단풍이 보이는 마을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 적이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서울 전경 또한 절경일 거라고 생각된다. 날이 더 쌀쌀해지기 전에 북촌 한 바퀴 산책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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