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식인 신선로와 구절판에 대해 소개한다. 두 음식 모두 궁중 요리로 알려져 있고 현대에는 높은 사람이나 중요한 사람에게 대접하기에 좋은 음식으로 변현 되었다. 가격은 조금 비싼 편이며 일반 음식점에서는 먹기 힘들고 전문 점에서나 먹을 수 있다.
한국 음식 신선로
신선로(神仙爐)는 한국의 요리 중 하나이자 궁중음식에 속하는 요리이다. 원래 명칭은 열구자탕 (悅口子湯)이고 신선로는 열구자탕의 그릇을 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신선로가 이 요리 자체를 뜻하는 말로 굳어졌다. 별칭으로 '구자탕', '탕구자'라고도 한다. 둥근 그릇인 신선로에 고기, 해산물, 채소 등을 잘라서 넣고 소고기 육수를 부어서 끓이는 음식으로 밑바닥에 쇠고기, 무, 생선전, 천엽전, 우간(牛肝)전, 미나리 또는 파를 담고 해삼, 전복을 넣어서 맨 위에 황백, 버섯, 홍고추, 완자, 깐 호두, 볶은 은행 등을 색조를 맞춰서 아름답게 돌려 담은 음식이다. 한복과 같이 색의 조화와 다채로운 색채, 그리고 신선한 재료의 맛이 각각 느껴져야 하고, 육수를 먹을 때 재료의 맛이 살아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포인트인 요리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는 신선로가 중국의 훠궈르(火鍋兒)라는 음식에서 온 것이라 했다. 명.청대 중국인들이 이주한 화교들이 거주하는 동남아 국가에서도 신선로와 비슷한 음식이 존재하며, 신선로처럼 훠궈르도 그릇 한가운데에 숯불을 피우고 그 둘레에 국을 끓여서 고기, 생선, 채소를 익혀먹는 것이었다. 한편 17, 8세기 조선 시대의 《소대기년》(昭代紀年)에는 연산군 때의 정희량이 갑자사화를 예견하고 단에 집을 나가서 이름도 이천 년이라 바꾸고 승려로 위장해 방랑하였는데, 《주역》(周易)에 나오는 수화기제(水火旣濟)의 이치를 응용해서 솥을 만들어 채소를 끓여 먹었으며 훗날 사람들이 그 솥을 신선로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1940년에 수표동에서 반찬가게를 하던 홍선표라는 사람이 지은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이라는 책에도 실려 있다. 1809년에 저술된 《규합총서》에도 등장할 정도로 조선 시대에는 대중화된 음식이었다. 그러나 학자들은 신선로 그릇과 거의 같은 그릇이 '화과자'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정희량이 만든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것으로 분석한다. 건너온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700년대 ~ 1800년대 초에 쓰인, 규합총서, 임원경제지, 동국세시기 등 여러 책에서 열구자탕(신선로)에 대한 글이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최소한 이 시기 이전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사모바르(Samovar)를 비롯하여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많은 지역에서 비슷한 그릇이 발견된다. 이들은 모두 용기 중앙 격리된 공간에 연료를 넣고 가열하여 음식을 데우며, 용기 아래에는 산소를 공급해 줄 구멍이 존재한다. 또한 뚜껑이 존재해 수분이 많은 요리를 조리할 수 있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유목 민족 문화권과 그에 영향을 받은 주변부에서 광범위하게 쓰고 있는 용기이며 중국의 훠궈나 한국의 열구자탕(신선로)도 여기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궁중 요리에서는 "진찬의궤"와 "진연의궤"에 궁중 연회에 차려졌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온다. 최초의 등장은 1795년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 현융원에 행차한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이며 1902년까지 총 10회 등장한다. 이 "진찬의궤"와 "진연의궤"에는 열구자탕(신선로)에 사용된 식재료와 분량도 나와있다. 조선의 영조는 신선로를 탕평 정치에 내세워 써먹었다. 각 당파의 영수들을 대접하는 자리에 신선로를 갖다 놓고 술 한 잔 들 때마다 다른 재료를 집으면 신하들은 왕을 따라서 왕이 집는 재료를 집었으며, 서로 뒤섞이게 함으로써 당파들을 서로 화합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1931년 1월 27일 자에는 「꼭 알어둘 이달료리법」이라는 제목으로 신선로가 포함되어 있으며, 1932년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신선로가 등장한다. 《조선요리학》에는 신선로에 대해 음식 그릇도 이상적이고 운반하기도 편리하며 음식 배열도 미적 감각을 갖추어 이국에 자랑할 만한, 자랑스러운 우리 음식이라고 극찬하고 있다.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일반 가정에서는 흔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화려한 모양으로 눈길을 끌기 때문에 청와대 국빈 만찬에 단골로 등장한다. 만찬 도중 실내조명을 모두 끄고 1인용 신선로 수십여 개를 동시에 내놓는 장면을 연출하면 어두운 실내에 숯불이 핀 신선로가 들어서는 모습 자체가 독특한 퍼포먼스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설로의 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1. 먼저 소고기하고 무로 육수를 만들고, 전유어나 고기완자도 미리 준비한다.
2. 신선로 밑에 고기를 깔고, 양념한 고기, 얇게 뜬 생선을 차례로 얹는다.
3. 전복하고 해삼, 표고버섯 등은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사이사이에 끼운다.
4. 위쪽에 여러 빛깔의 호두, 은행, 잣, 고기완자 등을 꾸미듯이 두르고 마지막으로 육수를 붓는다.
5. 숯을 피워서 신선로 가운데 화통에 넣고, 전골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 상에 내어 먹는다.
한국 음식 구절판
구절판(九折坂, gujeolpan)은 찬합에 담아 먹는 한국 고유 음식이다. 둘레의 여덟 칸에 각각 여덟 가지 음식을 담고, 가운데 둥근 칸에는 밀전병을 담아 둘레의 음식을 골고루 조금씩 집어 밀전병에 싸서 먹는다. 먹을 때에는 밀전병 한 장에 고기나 채소 서너 가지를 조금씩 올리고, 겨자장이나 초장을 넣어 싸 먹는다. 구절판에 마른안주, 깎은 날밤, 은행, 호두 등을 고루 담은 것은 마른 구절판(건구절판)이라고 한다. 구절판은 색이 화려하고 맛이 산뜻하여 교자상이나 주안상의 전채요리로 알맞다. 궁실이나 반가에서 유두절(음력 6월 15일)의 시절식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구절판의 기원은 밀쌈이다. 이는 조선시대의 궁중 잔치를 조선요리법, 이조궁정요리동고 등에 언급되어 있는데, 정작 그 기원인 밀전병 쌈은 현대에는 완전히 소실되었다. 궁중요리기도 하고 고급스러워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널리 알려져 있기는 했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정작 실제로 먹는 일은 드물어졌다. 이는 밀전병을 그 자리에서 부쳐야 하는데 이것이 심히 품이 많이 들뿐 아니라, 재료 하나하나를 만들기는 힘든데 정작 그 요리 자체가 그렇게 특별한 맛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구절판의 요리법은 다음과 같다.
월남쌈과 비슷하게 얇게 부친 밀가루 전병에 여러 채썬 재료를 넣고 싸 먹는 요리로 그 모양이 예뻐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다른 재료는 칼질에 익숙하면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어도 중앙에 놓는 전병을 얇게 부치는 게 매우 어렵다. 들어봐서 조명이 비칠 정도로 얇게 부쳐야 한다고. 게다가 하나하나 따로 부쳐야 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고 귀찮은 편. 덕분에 요즘은 쌈무 등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면 월남쌈의 라이스페이퍼를 갖다 놓을 수도 있지만 맛이 조금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찬합에 들어갈 수 있는 양도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에 전병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도 중요. 그러나 꼭 밀가루 전병과 재료들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가끔 주인상이나 다과상으로 올라가는 듯. 전병 부치는 것을 빼면 어렵지는 않은데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라서 이것 하나만 상에 올라가면 손님 접대 격이 팍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밀전병 외에 나머지 8가지 재료는 문헌마다 차이가 좀 있다. 일단 1930년대에 처음으로 신문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소고기 육회, 콩팥, 양(위장), 천엽, 당근, 오이(or 미나리), 표고, 배 를 얇게 채 썰어 준비했다고 한다. 육회와 배를 제외한 나머지 재료는 전부 기름에 볶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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