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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식

한국의 전통주의 역사와 종류

by 또바기벗 2023.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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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한국의 전통주>

 한국사에서 술에 대한 첫 기록은 중국 서진 사람 최표가 쓴 고금기에 함께 실린 고조선 시대의 조선현(오늘날의 평양시)에서 지어진 공무도하가에 대한 해설문으로, 백발의 광인이 술병을 쥐고 강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술이 한국사 관련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이런 공무도하가와 관련된 기록 및 정사 삼국지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기록들 그리고 유적과 출토되는 유물들을 살펴봤을 때 한민족은 고조선 시대부터 술을 만들어 먹었고,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 그리고 후삼국시대에도 술의 명맥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신라 제19대 눌지 마립간이 신하들과 가진 잔치에서 술을 마시는 순서가 3번 돌아가고 음악이 시작되었다는 기록에서# 술자리 예절이 생길 만큼 음주가 일반화되었음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 중.후기에는 원나라를 통해 아랍의 증류 기술이 전파되어 증류식 소주 등 증류주를 빚기 시작했고, 이러한 증류주들의 내력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최소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밥 대신 막걸리로 혀에 착착 들러붙는 탁주, 맑고 향기로워 식사 반주에 제격인 청주, 청주에 여러가지 부재료를 넣은 약주, 청주나 탁주를 증류한 소주, 소주에 과실이나 부재료를 침전시킨 약소주, 청주에 증류식 소주를 넣어 보존성을 향상시킨 과하주, 그리고 이 술들을 섞은 칵테일인 혼돈주까지 다양한 술이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술 좋아하고 노래 춤 좋아한다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생각해 보면 역사 속에서 다종다양한 주류 문화가 발달한 것은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그러한 주류 문화를 재발굴하고 탐색하는 것은 21세기에도 역사적,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도 한국 요리와 반주로 함께 할만한 제대로 된 술은 전통주밖에 없다는 점에서, 전통주의 발전은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도 필수라고 생각한다.

한국 전통주의 역사

 우리 전통주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조선의 〈공무도하가〉에서 등장한다. 서진의 최표(崔豹)가 쓴 《고금주》(古今注)에 수록된 이 시에서 고조선의 백발 광인이 술명을 쥐고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술의 존재가 확인된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주는 막걸리이다. 멥쌀, 찹쌀, 보리쌀 등 곡류로 빚기 때문에 삼국 시대 이전 농경이 이루어진 시기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막걸리는 삼국 시대부터 양조되어 왔으며, 13세기 고려 시대 서적인 《제왕운기》에는 유화가 해모수가 준 술에 취해 결국 주몽을 잉태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술이 막걸리로 여겨진다. 청주를 언급한 다른 초기 기록도 많이 있다. 고려에서 편찬된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서 661년 가야 수로왕의 17대 후손을 위해 신라에서 요례(醪醴, 청주)를 빚어 주었다고 언급한다. 일본 아스카 시대 고사기의 오진 천황 장에는 백제의 인번(仁番)이라는 사람이 양조법을 전파하였다는 언급이 있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이 쓴 공자시(公子時)에는 신라주(新羅酒)가 멥쌀로 빚어졌다는 내용도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미온(美醞)’, ‘지주(旨酒)’, ‘료예(醪醴)’ 등 막걸리로 추정할 수 있는 내용들이 확인된다. 신라시대에는 음주가 보편화되어 술자리 문화도 나타났다. 고려시대에는 이화주라는 술을 마셨는데, 이 역시 막걸리를 말한다. 이것은 그 무렵 한국의 많은 지역사회에서 특별한 의식에서 밤새도록 술과 춤을 추는 전통과 관련이 있었다. 막걸리는 수세기 동안 집에서 양조되었고, 시골 노동자 계층의 음료로 여겨졌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등 당대 문인들의 문집에도 막걸리로 추측되는 ‘백주(白酒)’ 등의 용어가 확인된다. 조선시대에 들어 전통주가 가장 활발히 발전하였으나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의 전통 말살 정책으로 인해 많은 전통주를 잃게 된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부터 현대까지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다.

 

일제 강점기 한국 전통주의 몰락

 대한제국 말기 일본제국의 영향으로 대한제국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근대적 세법을 도입하며 주세법을 최초 도입한 직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며 조선총독부는 대만 식민지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 식민지에 대한 비용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세저항이 적은 간접세를 적극 도입했고, 이 과정에서 주세법이 강화되어 시행됐다. 당시 도입된 주세법은 근대 산업적 규제 및 관리를 위한 면허제와 회사의 통합, 조선주(전통주)와 일본주의 구분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 세법상 분리로 일본주 업체가 조선주보다 좀 더 유리하게 세법을 적용받아 조선에 일본 주조 업체들이 잘 정착 할 수 있었다. 또한 주정식 소주, 즉 희석식 소주에 대한 주세가 저렴했던 일본 본토 주세법의 영향으로 희석식 소주에 대한 세금이 저렴했고, 1920년대 말 마스나가 주조소가 처음으로 희석식 소주를 생산한 이후 희석식 소주를 제조하는 조선 업체들까지 등장하며 조선에 희석식 소주가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일제는 1916년 강화된 주세령으로 제한면허제를 시행하여 각 가문에서 자가용으로 만드는 가양주에 대해서도 자가용 제조 면허를 받도록 했는데, 자가용 술에 대해서 시판하는 술 보다 높은 세율을 매겼다. 즉, 만들어 먹는 것보다 사 먹는게 더 싸게 만듦으로써 자신들의 관리 하에 있는 양조 업체들의 술을 사마시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가양주를 타인에게 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면허자가 사망하면 상속인이 면허를 이어받을 수 없도록 했다. 사실상 가양주 주조를 막으려는 정책이었다. 면허제 시행 초기, 자가용 면허를 받은 사람은 30만명이 넘었으나 이러한 가양주 탄압 정책으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면허자는 급감하였고 1932년에는 오직 1명만이 남았으며 마지막 면허권자의 사망 이후인 1934년에는 단 한명도 면허자가 남지 않았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전통주들과 가양주들이 밀주가 되어 지하로 숨거나 대가 끊겨 사라졌다. 다만 자본 투자를 유치하고 근대적 생산 체계를 갖추어 총독부 직권으로 '주류 제조 및 유통 면허'를 받은 전통주 업체들 또한 이 시기에 등장하였다. 소주는 개성 이북 지방에서, 탁주는 개성 이남 지방에서 주로 소비되었는데, 북한 지방에서는 1927년 주정식 소주에 맞서 진천양조상회 등에서 기존 고가의 증류식 소주를 대체하는 흑국 소주를 생산하며 어느 정도 경쟁 체제를 갖췄다. 남한 지방에서도 군산이 개항, 일제의 쌀 수탈 창구가 되면서 여기에 쌀이 몰리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군산의 조선주조에서 생산하는 일본식 청주를 필두로 탁주, 흑국/백국 소주가 생산되어 조선 내수 시장에 공급된 것은 물론 일본제국 내 다른 지역들로도 수출되었다. 청주와 증류식 소주는 이때부터 시장에서 지위를 잃고 지역 유지 계층, 명문가의 고급 가양주로서만 유지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29년의 미국발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충격에 이어 1930년대 중반 이후 일본제국이 전시체제에 돌입하며 식량과 주류를 전략물자로 통제하기 시작하자 대만산 당밀의 공급에 차질이 생겨 흑국마저 도태되고, 많은 양의 쌀이 필요한 청주와 증류주 또한 크게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조선 업체들이 생산하는 막걸리 등의 탁주만큼은 타 주류의 전시 통제에도 불구하고 조선 내 주류 시장 중 약 70% 점유율을 유지했다.

광복 이후 한국의 전통주

 광복 후 미군정이 약 3년여간 실시되고 이후 남한 지역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미군정과 한국 정부 모두 전통주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식량 수급 사정 개선과 물가 안정 그리고 세수 확보를 위해 엄격한 미곡 유통 통제와 강화된 주세법을 실시하였다. 또한 이 시기 쌀 수급 상태와 시장 소비력이 타격을 입으며 전통주 업계의 처지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20세기 전반부의 고된 역사 속에서 한국 시장을 파고든 희석식 소주, 부가물 라거, 삼배증양청주에 맞선 힘겨운 경쟁을 지속하면서도 명맥을 유지하던 전통주들은 6.25 전쟁으로 다시 한번 큰 타격을 입었다. 6.25 전쟁으로 대부분의 생산 설비가 파괴되었으며 전통주 업체들의 기술자들과 경영자들, 그리고 지역 가양주 계승자들이 사망하거나 납북당하면서 남한 지역 내 전통주는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그중 청주와 증류식 소주와 같은 고급 가양주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는데, 이를 만들고 마시던 이들은 주로 지역 유지 계층의 옛 명문가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인민군과 중공군 그리고 그 앞잡이들의 우선 살해/납치 목표였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피난 과정에서 경제적/사회적으로 몰락하여 더 이상 술을 제조할 수 없게 되거나 누룩과 제조 장비를 비롯한 생산 설비와 비법을 잃어버린 경우가 제법 존재한다. 또한 극한 전시경제 체제로 원료인 쌀의 확보조차 어렵게 되어 양조에 쌀을 사용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전후 제1공화국과 2공화국의 열악한 경제사정 속에서 지속되는 전통주 규제를 거치며 전통주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쌀 자체가 부족하여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는 판이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쌀이 많이 드는 전통주 제조를 허가할 상황이 아니었다.

군사독재시기의 한국 전통주

 1960년대에 접어들며 식량 사정이 다소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쌀 생산량은 늘어나는 인구 부양을 위해서는 부족한 편이었고, 산업화가 진행되어 농업 인구가 줄어들고 도시민 등 비농업 인구가 크게 늘자 농업 생산과 유통의 효율을 최대한 높여 비농업 인구를 부양하는 방향으로 식량 정책의 목표가 정해졌다. 따라서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 시대에 전통주에 대한 규제는 더욱 강해졌다. 이 시기 희석식 소주, 부가물 라거 맥주, 대량으로 수입되는 싸구려 양주 같은 가성비도 높고 세금 붙이기도 좋은 술들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주세 수익이 필요한 조세당국의 조세 정책과, 본격적으로 산업화를 진행하며 도시 노동자의 낮은 임금에 맞는 낮은 생활비 수준을 유지하고 도시 인구 부양을 위한 식량을 우선 확보해야 하는 경제 당국의 필요, 전통주 금지 정책에 힘입어 앞서 언급한 주류들의 생산과 수입, 유통을 맡아 몸집을 불린 주류 회사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1980년대에 이르는 상당히 오랜기간 전통주 제조는 크게 제약되었다. 1965년 주세법이 개정되며 일부 수출용 제품을 제외한 미곡을 원료로 하는 전통주는 탁주까지도 전부 제조가 금지되었다. 다만 수출용 제품은 예외를 뒀다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해외에 내놓을 대한민국을 대표할 전통주가 있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금복주에서 만드는 경주법주가 나왔지만, 그건 브랜드명만 "경주법주"인 도저히 전통주라 할 수 없는 술이었고, 정작 경주에서 법주를 만드는 명가들은 제조를 금지당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쌀을 이용한 탁주에 대대적인 규제가 가해지자 막걸리를 비롯한 탁주들에도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밀, 보리 등이 사용되며 크게 품질이 떨어졌고, 이렇게 품질이 크게 떨어진 탁주 특히 막걸리는 희석식 소주와 부가물 라거 등에 밀려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밀려났다. 그러다가 1977년 식량사정 개선으로 탁주에 쌀 사용이 다시 허가됐고, 1988년에는 서울 올림픽을 맞이하면서 전통주를 조금이라도 인정해야 할 필요가 생기면서 이때까지는 밀주의 형태로 이어지던 증류주 및 청주 계열 민속주 가운데 딱 8개를 정해서 판매를 허용했다. 이것이 소위 '국가지정 8대 민속주'이다. 이후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규제가 풀리기 시작하였으나 때마침 터진 IMF 금융위기로 한국 경제에 타격이 가해지고 희석식 소주와 부가물 라거가 시장의 주류로 다시 한번 확고히 자리매김했지만, 동시에 밀주 형태로 이어져오던 전통주들이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양지로 나오기 시작하고 사라진 전통주들을 복원하거나 전통누룩을 사용한 제법으로 새로운 술들도 개발되기 시작했고,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의 전통주

 산업화 시대에 희석식 소주가 술의 주류를 차지했고, 대중적인 막걸리와 청주도 일본식 입국의 사용이 잦아져 그 정체성을 대부분 상실했다. 다행히도 2000년대 접어들면서 일본식 입국에서 전통식, 혹은 전통 개량식 누룩으로 바꾸는 추세이다. 그리고 전통문헌의 복원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새로운 기법의 양조가 진행되며 복원하고 있다. 물론 가양주 제조가 금지되던 시절에도 밀주 형태로 계속 몰래 만들어오면서 복원이 아닌 진짜 수백년 대대로 이어져 오는 전통주들이 발굴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음주 문화가 맥주/양주에서 와인, 위스키, 보드카로 넘어가면서 식상한 음주문화에 전통주를 소비하는 트렌드가 목격되고 있다. 대부분의 전통주가 가격이 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장 어지간한 전통주들은 국가 공인 명인의 손 내지는 해당 술의 기록을 더듬어 복원하여 빚어진 술들이며 애초에 대한민국의 주세법상 좋은 술은 쌀래야 쌀 수가 없다. 관세가 붙는 해외 술과 비교하면 싸지만 관세보단 근본적인 주세 자체가 높은 게 더 문제다. 최근에는 전통주/막걸리를 취급하는 전문점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소비자들의 전통주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면서 전통주는 새로운 문화로 접어들고 있다. 단순한 술 이상의 식문화이고 한류와 수출 같은 거시경제 지표와도 관련이 있다.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전통주 사업을 장려하고 있다. 때문에 전통주는 다른 주류들과 달리 주세법상 여러 혜택을 보고 있다. 예를 들면 주세의 경우 해당 주류에 매겨지는 주세의 1/2 혜택을 받기 때문에 비슷한 품질의 타 주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게 구입할 수 있다. 또한 주류의 통신판매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에 따라 전통주는 다른 술과 달리 네이버 쇼핑, 쿠팡, 위메프 같은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술을 구매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막걸리나 약주, 증류식 소주를 집에 배달해서 마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국 전통주의 종류

한국 전통주는 재료와 주조의 방식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나뉜다. 탁주, 청주, 소주, 혼양주로 크게 나뉜다. 탁주는 술지게미를 거르지 않아 색이 탁하고 흐린 술을 의미하며 양조주에 속한다. 탁주의 종류에는 막걸리, 합주, 감주, 이화주, 감향주, 사절주, 모주가 있다. 청주는 발효가 끝난 술에서 술지게미를 걸러내어 색이 맑은 술을 의미하며 양조주에 속한다. 청주의 종류에는 순곡청주인 동동주와 약주인 가향주, 약용약주, 과실주가 있다. 소주는 탁주나 청주를 증류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증류식 소주라고도 부르며, 순곡소주와 약소주로 나누어진다. 순곡소주는 증류주에 속하며, 약소주는 혼성주에 속한다. 순곡소주에는 쌀소주, 밀소주, 보리소주, 수수소주, 좁쌀소주, 옥수수소주, 고구마소주, 메밀소주가 있고, 약소주에는 담근주가 있다. 혼양주는 서로 다른 주종의 술을 섞어서 만드는 술로 혼성주에 속한다. 혼양주에는 과하주, 합주, 혼돈주가 있다.

지역별로도 다양한 종류의 전통주가 있으며 다음글에서는 지역별 전통주에 대해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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