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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식

한국의 지역별 전통주 2탄 경기도의 전통주

by 또바기벗 2023.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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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전통주 중 송절주>

 이번 글에서는 한국 지역 내 경기도에 있는 전통주에 대해 알아보겠다. 경기도에 있는 전통주에는 삼해주, 삼해소주, 송절주, 향온주, 부의주, 옥로주, 남한산성소주, 한주, 약산춘, 주교주, 특주, 칠선주, 옥미주, 토속주, 해주, 합주가 있다. 경기도에 서울도 포함하여 소개한다.

경기도의 전통주

삼해주(서울) : 정월 첫 돼지날에 멥쌀로 쑨 죽과 밀기울이 없는 흰 밀가루 누룩[2]으로 밑술을 빚고, 이후 다가오는 돼지날에 찹쌀 고두밥으로 덧술을 치고 그다음 돼지날에 다시 멥쌀 고두밥[3]을 덧술을 쳐서 총 세 번 빚은 삼양주다. 고급 청주로 양반가에서 사랑받았으며, 쌀을 많이 쓰기 때문에 금주령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삼해주는 12지(十二支) 가운데 맨 끝에 오는 돼지날(해일:亥日)에 처음 술(밑술)을 빚기 시작하여 12일 간격이나 36일 간격으로 돌아오는 다음 해일에 덧술을 하고, 다시 돌아오는 해일에 세 번째 술을 해 넣는 까닭에 술이 익기까지는 최소 36일에서 96일이 걸리는 장기 발효주로정월 첫 번째 해일(亥日)부터 술을 빚기 시작하여 돌아오는 두 번째와 세 번째 해일마다 덧술을 하여 빚은 술이라는 뜻이다. 맛이 순후하고 향이 좋아 춘주(春酒)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삼해주는 〈규곤시의방〉을 비롯 〈요록〉, 〈주방문〉, 〈양주방〉 등 여러 문헌에 수록되어 있는데, 〈동국이상국집〉에도 삼해주가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때부터 빚어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맛과 향이 뛰어나 당시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청주로 자리매김되어 왔다. 18세기 조리 관련 자료에는 100여 가지가 넘는 술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기록된 빈도가 가장 높은 술이 바로 삼해주(三亥酒)였다. 당시 조선인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술이었으며, 조선을 방문했던 외국인들도 프랑스 와인에 빗대며 극찬했던 술이다. 삼해주는 찹쌀과 멥쌀로 빚는 술이다. 술을 빚을 때 찹쌀이나 멥쌀은 물에 담가 충분히 불린 후 고두밥을 쪄서 쓰기도 하지만, 가루를 내서 뜨거운 물에 개거나, 죽을 쑤거나, 되직하게 반죽하여 둥글게 빚은 후 가운데 구멍을 내어 마치 도넛 모양으로 만든 구멍떡을 삶아 익히거나, 백설기로 쪄서 쓴다. 삼해주의 밑술은 찹쌀이나 멥쌀을 가루 내어 묽은 죽을 쑤거나 익반죽하였는데 백설기로 찐 후 끓인 물을 섞어 다시 풀어주는 방법을 택하였다. 청주 문서에도 나오지만 청주는 걸러내는 과정에서 일양, 이양, 삼양 등으로 나뉘는데 삼해주는 삼양주이다. 삼해주를 빚는 마지막 덧술에서는, 통상적으로 대개 멥쌀을 이용하여 고두밥을 지었다. 고두밥을 넣으면 맑은 술을 얻을 수 있다. 덧술을 반복할수록 발효가 안정되어 저장성이 높아지고, 술의 양이나 알코올 도수가 올라간다. 무엇보다 술의 맛과 향이 중첩되어 좋은 술이 되었다.

삼해소주(서울) : 삼해소주는 1241년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처음 언급된 술로 역사가 900년 이상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양에서는 '삼해주'로 불리며, 여러 소주의 대명사처럼 불렸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술이 집에서 빚는 '가양주'였지만, 삼해소주는 마포·공덕 일대 양조장에서 기업 형식으로 만들어 전문적으로 판매됐다. 삼해소주는 왕부터 백성까지 모두 사랑하는 술이었다. 정조는 작황이 좋지 않아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신하의 상소에 "그럼 삼해주도 다 버려야 하는 것이냐"라며 거절했다는 기록도 있다. 일제강점기 주류에 세금을 붙이는 주세령을 도입함에 따라 값싼 희석식 소주가 보급되고, 1965년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한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양조장에서 빚는 삼해소주는 전멸하게 된다. 다행히 김 명인의 어머니인 고(故) 이동복 명인이 삼해소주 제조법을 전수받아 집에서 가양주로 보존해 오늘날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 삼해소주도 삼해귀주만큼은 아니지만, 1년에 약 3500병 정도만 생산되는 희귀술이다. 만드는 법 자체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이름에 붙은 삼해(三亥)가 이 까다로운 공정을 의미한다. 가을에 추수한 햅쌀을 이듬해 정월 돼지의 날 '해일(亥日)'에 밑술을 빚고 두 번째 해일까지 36일을 발효시킨다. 그리고 덧술(술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1차 밑술에 2차로 겹쳐 담가 덧 넣는 술밑이나 술밥)을 해 다시 36일을 발효한다. 세 번째 해일에 다시 덧술을 해 36일을 또 발효해야 비로소 원주가 된다. 여기까지 꼬박 108일이 걸린다. 이를 한번 증류한 것이 삼해소주다.

송절주(서울) : 서울송절주의 유래에 대한 정확한 고증은 없으나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규합총서(閨合叢書)》 등에 소개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중엽 16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근래에 와서는 선조 때 충경공 이정란(李廷鸞 ,본관 전의) 장군의 14대손 필승의 처 허성산(許城山, 1892∼1967)이 송절주를 빚었으며, 그 자부인 박아지(朴阿只)에게 전수되었고, 현재는 이성자가 기능을 계승하고 있다. 송절주의 주질(周質)은 황갈색을 띠며 강한 약재 향기를 풍기며 진득찰ㆍ당귀 등의 첨가로 치담ㆍ치풍ㆍ신경통 등에 좋다고 한다. 저장은 옛날에는 땅속에 독을 파묻어 저장하였으나 현재는 저온냉장고를 이용할 수 있으며, 온도가 적당하면 수개월까지 저장이 가능하다. 조선시대부터 널리 빚어 마시던 전통 민속주로 지역적 특성을 고증할 수는 없으나, 한말에 이르기까지 서울 부근의 중류계층에서 소비했던 술이다. 『동의보감』·『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규합총서(閨閤叢書)』·『임원경제지』·『술 빚는 법』·『부인필지(夫人必知)』 등에 기록되어 있다. 만드는 법은 멥쌀 다섯되를 여러 번 씻어 담갔다가 가루로 만들고, 물 다섯되를 끓여 넣고 개어 차게 식힌 뒤 누룩가루 한되, 밀가루 칠홉을 넣고 버무려 단단히 싸맨다. 너무 차지도 덥지도 않은 곳에 두었다가, 송절 두말을 넣고 진하게 곤 물을 부어 술밑을 만든다. 멥쌀 다섯되, 찹쌀 한말을 하루 전에 씻어서 담갔다가 각각 지에밥을 쪄서 식힌 뒤 술밑과 버무린다. 삶은 송절을 항아리 밑에 넣은 뒤 술밑과 버무린 메밥과 찰밥을 그 위에 넣고, 송절을 삶아서 식힌 물 두말을 붓고 단단히 싸맨다. 너무 차지도 덥지도 않게 하여 익힌다. 봄에는 진달래, 가을에는 국화를 넣고, 겨울에는 유자껍질을 위에 매달아 익히면 솔향기와 꽃향기가 입에 가득하여 맛이 좋다. 독특한 솔향기와 소나무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뜻으로 인하여 선비들이 각별히 즐기던 술이었다고 한다. 냉풍(冷風)과 근골(筋骨)이 허약한 데, 손발이 오그라지는 데, 각기(脚氣)나 팔다리가 마비된 데를 다스리며, 원기를 북돋우는 효험이 있다.

향온주(서울) : 향온주는 맵쌀과 찹쌀을 쪄서 식힌 것에 보리와 녹두를 섞어 만든 누룩을 넣어 담근 술을 말한다. 알코올 도수가 40도에 이르는 독주이며 해독작용이 뛰어나고 향기가 매우 좋다. '내국법온' 이라고도 불린다. 향온주는 맑고 투명하며 부담이 없는 은은한 향기와 깊은 맛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향온주라는 명칭은 임금이 마시던 어주(御酒)를 뜻한다. 또한 향온주의 별칭인‘내국법온’이라는 명칭은 조선조 정부 관청의 하나인 내의원(內醫院)의 양온서(良溫署)에서 법제하여 제조한 술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보통 술들은 모든 음식을 요리해냈던 사옹원에서 담당했는데, 임금이 마시던 술은 내의원 양온서에서 특별히 어의들의 감독 하에 빚어졌으며, 임금이 마시기도 하고 이를 신하들에게 하사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향온주는 여느 술과는 다른, 매우 독특한 향과 맛을 자랑하는데, 일반 술에서 흔히 쓰는 누룩이 아닌,‘향온곡’ 이라고 불리는 특수한 누룩을 사용하는 발효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누룩은 통밀을 거칠게 가루 낸 뒤 일부 물을 섞어 밀기울이나 밀가루와 뭉쳐서 성형틀에 단단히 디딘 뒤 따뜻한 온돌방바닥에 한동안 두어 띄운다. 그런데 향온주를 담그기 위한 누룩인 향온곡은 통밀을 거칠게 갈아낸 가루에 녹두가루 또는 녹두즙을 섞어 누룩을 성형한 뒤 온돌방에서 띄워 만든다. 녹두누룩으로 빚는 향온주는 녹두의 기능인 제독 효과와 술 향기를 좋게 하는 특징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향온주의 독특한 향은 특별한 누룩인 향온곡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무릇 술을 빚을 때에는 누룩이 제일 중요하다. 향온주만의 누룩인 향온곡이 준비되었다면 향온주를 빚을 차례다. 고문헌 『규곤시의 방』에 수록된 향온주 빚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멥쌀 1말, 찹쌀 1되, 거칠게 빻은 향온곡 1되 5홉, 석임 1홉, 물 1.5병(되)을 준비한다. 술을 빚을 때 고두밥에 누룩과 끓는 물을 섞어 식으면 향온곡을 넣어 잘 섞어준 뒤 항아리에 안쳐 따뜻한 곳에 둔다. 『규곤시의 방』의 수록되어 있는 향온주는 고두밥을 지어 차게 식힌 뒤, 끓는 물을 뜨거운 고두밥에 붓고 고두밥이 물을 다 빨아들여 불면 차게 식힌 뒤 누룩을 넣어 만든다. 보통 한번 끓인 뒤 식힌 물을 양조용수로 쓰는 방법과는 다른 방법이다. 이를 ‘증숙’이라 말하는데, 끓는 물이 고두밥을 팽창시켜 호화도를 높여주고 발효력을 증진시키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고두밥에 끓는 물을 고르게 분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향온주에 석임을 넣는데, 석임은 술을 빨리 빚을 수 있을뿐더러 이양주의 효과를 주기 때문에 술의 맛과 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며 술의 양을 늘리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밑술에 덧술을 더하여 만들지 않는 단양주인 향온주는 단양주의 단점인 낮은 알코올 도수로 인하여 변질되기 쉽다. 이를 위해 당 농도를 높여 알코올 도수를 높여주어 술이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는 당화촉진제로 엿기름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한 멥쌀과 찹쌀의 재료 구성 비율에 있어서 특별한 점이 있다. 단조롭고 깔끔한 맛을 지닌 멥쌀에 소량의 찹쌀을 더하여 단맛과 부드러운 맛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 것은 향온주만의 매력이다. 나아가 이렇게 빚어진 탁주를 증류하하여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결과물이 바로 향온주이다.

부의주(화성) : 고려시대부터 빚어온 것으로 알려진 부의주는 술 위에 떠 있는 밥알의 모습이 개미가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로 동동주로 널리 알려진 경기도 화성 지역의 전통 민속주로 부아주(浮蛾酒), 녹아주(綠蛾酒)라고도 불린다. 맑은 술 위에 동동 떠 있는 밥알이 나비와 흡사하다고 하여 알려진 이름이다. 화성 부의주는 경기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부의주는 『목은집』에 기록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부터 빚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조선시대의 문헌에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 화성군의 부의주는 경상북도 안동 태생인 권오수옹이 전통을 복원하여 빚기 시작한 것을 차남 기훈이 계승하여 빚고 있다. 주원료는 찹쌀과 누룩이며 알코올도수는 13도이다. 보존기간은 겨울철 상온에서는 15일 정도 가고, 냉장보관하면 1년도 가능하다. 화학첨가제를 넣지 않기 때문에 많이 마셔도 뒤끝이 깨끗한 장점이 있다

옥로주(안산) : 옥로주는 민속주의 하나로 증류식 소주다. 옥로주는 1880년경부터 충남 서산 유씨인 유성근柳盛根이 그의 부친을 따라 전북 남원 산동으로 이사하여 최초로 옥로 소주를 빚게 되었으며 그 후 1947년 초에 경남 하동의 양조장에서 유양기가 알코올 농도 30% 소주를 생산하면서 ‘옥로주’라는 상표를 붙였다. 술을 증류할 때 증기가 액화되어 마치 옥구슬 같은 이슬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옥로주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옥로주는 좋은 질의 지하수와 우리나라 재래종인 백미(白米)와 소맥小麥에다 특이하게 율무를 사용한다. 일반 누룩과는 다르게 밀과 율무를 누룩으로 사용한다. 분쇄한 밀 2말과 분쇄한 율무를 7되를 끓여서 식힌 용수에 반죽하여 약 3~5시간 정도 두었다가 여기에 마른 약쑥을 첨가하여 다시 반죽하여 성형하고 띄운다. 백미와 율무로 만든 고두밥 1되에 끓여서 식힌 양조용수 1사발과 누룩가루 4홉의 비율로 주모를 만든다. 그리고 50% 도정한 백미 한 말과 율무 한 말을 각각 시루에 쪄서 만든 고두밥에 밑술 7되와 양조용수 2말을 배합하여 술덧을 담근다. 술덧의 온도를 20~30℃로 유지하며 약 10일간 발효시킨다. 발효숙성이 끝나면 소줏고리를 사용하여 증류하는데, 처음 증류한 것은 85도 이상이고 나중 것은 점차 도수가 낮아지므로 이를 합하여 40~45도가 되도록 조절한다. 원료 5말을 담금하여 증류하면 40도 소주 약 2말이 나온다. 술의 도수가 높기 때문에 완전하게 봉해 놓으면 영구히 저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래 저장할수록 술맛이 익어 더욱 좋다. 군포당정옥로주라는 명칭은 당초 기능 보유자 유양기가 지정 당시 군포시 당정동 양조장에서 술을 제조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의 사후에 큰딸 유민자가 제조 비법을 전수받아 양산화하였으며, 이후 기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현재 양조장은 안산시 단원구(대부도)에 있으며, 보유자 유민자와 아들 정재식, 손자 정도영이 같이 술을 빚고 있다. 정재식씨는 술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1998년부터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한국미술협회 판화분과 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미술계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그러다 2013년 학교를 떠나 지금의 예도주가를 설립했다. 옥로주는 1996년 제1회 우리농수산물 대축제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1999년 경기도 명주선정품평회에서 증류주 부문 최고의 경기명주로 선정됐다.

남한산성소주(광주) : 광주 남한산성 소주는 남한산성에서 전승된 민속주이다. 남한산성은 ‘작은 서울’이라 불릴 정도로 숙종 때 번성했던 곳이다. 남한산성 일대는 서울에 근접해 부자가 많았으며 여유 있는 생활을 하던 이들이 만들어 마시면서 유래되어 조선후기까지 널리 애용됐다고 한다. 최초로 빚은 시기는 남한산성을 축조한 선조(재위 1567~1608) 때로 추정되며, 그 후 임금께도 진상되었다고 한다. 양조재료는 남한산성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과 이곳에서 생산되는 쌀, 그리고 재래종 통밀로 만든 누룩, 다른 토속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재래식 엿을 고아 사용한다. 누룩을 빚을 때 조청을 푼물로 반죽을 한다. 백미를 쪄서 식힌 지에밥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밑술을 만들 때 또 한 번, 덧술을 빚을 때 한 번 더 조청이 들어간다. 엿을 넣으면 술의 향취를 좋게 할 뿐만 아니라 술의 저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렇게 발효시킨 술의 알코올 도수는 13도 내외가 되며 증류 과정을 거쳐 40도의 증류주가 된다. 다른 약재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 맑고 깨끗한 것이 특징이다. 남한산성 소주는 이종숙(李宗肅)으로부터 연유한다. 이종숙은 남한산성에서 대대로 살며 술을 빚었다고 한다. 한때 그는 서울 송파구에서 양조장을 운영하여 ‘백제소주’라는 술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술을 만들었던 강신만이 그 비법을 전수받았으며 둘째 아들 강석필에게 물려주었다. 보유자 강석필 별세에 따라 그의 아들 강환구가 광주 남한산성 소주 종목의 전수조교로 활동하고 있다.

한주(안성) : 주세법 상 증류식 소주로 송절주 기능 보유자인 이성자 명인이 제조하며 원래 이름은 '백로주'였다.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500년 역사의 증류방식 '로주두말빚이' 비법으로 빚는다.

약산춘(서울) : 조선 중기에 서울의 약현(藥峴 : 지금의 중림동)에 살던 서성(徐渻)의 집에서 빚던 술이라 하여 약산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춘주(春酒)란 봄에 먹는 술을 말하기도 하고, 섬세한 방법으로 여러 번 덧술한 것을 의미한다. 약산춘은 봄에 먹는 술이다. 숙성기간이 길며, 물누룩(水麴, 수국)을 쓰는 등의 섬세한 솜씨를 필요로 하므로 한 번 덧술 하지만 춘주로 보고 있다.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치생요람(治生要覽)』·『산림경제』·『규합총서(閨閤叢書)』·『임원경제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약산춘을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 정월 첫 해일(亥日)에 멥쌀 다섯 말을 물에 담그고, 누룩은 찧어 다섯 병 정도의 물에 담가 물누룩을 만든다. 다음날 쌀을 가루 내어 쪄서 시루떡을 만든다. 물누룩은 체에 밭쳐서 찌꺼기는 버리고 그 물과 새로 길어온 물이 스무 병이 되게 한 다음에 떡에 섞어 항아리에 담는다.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로 서너 번 저은 다음에 기름종이로 싸고 베보를 덮어 마루에 놓아둔다. 술밑으로 빚어놓은 것에 거품이 일게 되면 매일 걷어내고 2월 그믐께 멥쌀 다섯 말로 지에밥을 쪄서 식힌 다음에 술밑에 같이 빚어 넣는다. 4월 초순까지 그대로 두었다가 맑은술을 뜨면 그 맛이 좋다. 술을 뜰 때에 물기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술맛이 변한다고 한다. 정월 첫 해일이 날씨가 포근하면 떡을 매우 차게 식혀서 쓰고 매우 추울 경우에는 따뜻한 날을 골라 밑술을 빚어 넣기도 한다. 술을 오래 두고 쓰려면 맑은 술을 떠서 다른 항아리에 넣고 볕이 들지 않는 곳에 보관하면 여름을 지내도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의 토속주로 알려져 있다.

주교주(고양) : 주세법 상 약주로 배다리 술도가를 5대째 이어온 밀양 박씨 집안에서 100년 넘게 전해진 가양주다. 양조장이 처음 자리 잡은 주교동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월계수잎을 띄워 먹는 게 특징이다.  경기 고양시 배다리 술도가에서 빚어내는 주교주(舟橋酒)의 역사는 엄밀하게 따지면 1세기에 가깝다. ‘주교’라는 이름은 마을 명칭을 딴 것으로 서해 바닷물이 마을 입구까지 밀려와 배를 이용한 다리가 놓여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생산하는 업체인 ‘배다리 술도가’ 라는 상호는 한자를 한글로 표현한 것이다. 배다리 술도가는 박상빈 대표이사(43)의 고조부가 창업했다. 1915년 ‘인근상회’라는 상호로 문을 연 뒤 5대째 가업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술과 잡화를 취급한 인근상회를 개업한 고조부는 상궁 출신인 집안사람과 다양한 술 개발을 시작했다. 그녀는 궁궐에서 오랜 기간 전약(典藥) 직책을 맡은 경험이 있어 궁내 약용주를 만드는 비법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당시 배다리 술도가에서 빚어낸 여러 종의 막걸리와 약주는 맛이 좋기로 유명해 한강 남쪽까지도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특주(김포) : 주세법 상 약주로 조선시대 말부터 이어져왔으며 본래 음력으로 첫달부터 100일 동안 빚는 백일주의 한 종류다. 품질이 뛰어난 김포쌀로 만들어 그 맛과 명성이 예전부터 높았다고 한다

칠선주(인천) : 주세법 상 약주. 조선 정조때인 1777년에 궁중에 진상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일곱가지 약재를 넣고 만들며 자주 마시면 신선처럼 오래 산다는 이야기가 있어 칠선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옥미주(안양) : 주세법 상 약주. 본래는 단양과 제천 지방에서 내려오던 남평 문씨 가문의 가양주였다. 옥수수와 현미를 넣어 빚어 이름처럼 구슬처럼 아름다운 담황색이 나며 부드러운 감칠맛이 특징이다.

토속주(안성) : 주세법 상 약주로 안성 지방에서 전통적으로 빚어오던 민속주이다. 약주에 인삼가루를 섞어서 만드며 부재료로 강냉이가 첨가된다.

해주(시흥) : 주세법 상 약주로 5대째 전해내려오는 대구 서씨 가문의 가양주이다. 본래는 약산춘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술도가 서씨 집안의 제사주로 쓰이던 술인데 현재는 별바랑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되었다.

합주(서울) : 문헌상 고려시대부터 언급되던 유서깊은 술이다. 다양한 서적에서 언급되는데 조금씩 만드는 방법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막걸리처럼 체에 거르는 탁주에 해당된다. 조선시대엔 주로 한양 부근에서 빚어지던 고급 탁주로 상류층들이 즐겨마시던 술이었다. 술을 발효시키고 난 후 청주와 탁주를 따로 분리하지 않고 섞어 마시던 일종의 혼양주였다. 그래서 탁주이면서 막걸리에는 들어가지 않는 술 중의 하나이다. 막걸리는 청주를 떠내고 남은 술지게미에 물을 섞어 체에 걸러내는 탁주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탁주이면서 막걸리가 아닌 경우로는 이화주가 있다. 조선 말기에 유행하던 폭탄주인 혼돈주는 바로 합주에 소주를 넣어 만드는 술이다. 굳이 따지자면 탁주, 청주, 소주가 모두 섞인 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세법 상 탁주. 조선시대 한성의 상류층에서 선호되던 고급 탁주로 일반적인 막걸리와는 달리 청주와 탁주를 합한 술이다. 배혜정도가가 '부자 10도'라는 이름으로 재현해 상품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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