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도 전라도의 전통주들을 소개하겠다. 세계의 오래된 술들도 각각의 이야기가 존재하듯이 우리나라 전통주에도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모든 전통주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통주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면 같이 소개하겠다. 얼마 남지 않은 전라도의 전통주를 끝까지 읽어주면 좋겠다.
백화주(김제시)
백화주(百花酒)는 밑술에 두 차례의 겹술[덧술]을 한 뒤 세 번째 겹술로 백 가지 꽃을 담아 최소한 40일에 걸쳐 만든다. 꽃은 이른 봄 매화에서부터 늦가을 감국까지 김제 들판에서 자라는 풀꽃과 꽃나무에서 채취하여 말린 것이다. 술 빛은 짙은 갈색인데 탁하진 않다. 도수는 14도쯤으로, 백화주는 도수에 비해 진하고 쓰다. 알코올기가 느껴지는 탕약 같기도 하다. 술을 마시고 나면 입에서 은은한 향기가 돈다. 백화주는 오직 학성강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술이다. 판매도 되지 않을뿐더러 자주 빚지도 않는다. 순전히 제사용과 접빈용으로 쓰일 뿐이다. 1년에 쌀 한 가마 분량만 술을 빚기 때문이다. 그 양은 60병 정도에 그친다. 백화주의 시작은 비닐봉지에 일일이 담긴 백 가지 마른 꽃잎들이 백초(百草)와 함께 세 번 발효를 마친 술에 한 줌씩 들어가면서부터다. 백초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만 백화(百花)를 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약초는 돈을 주고 구입할 수 있지만 꽃은 계절에 따라 활짝 핀 적기에 품을 팔아서 따야 하기 때문이다. 꽃은 말리면 아주 작아지므로 많이 채취해야 한다. 자생지를 찾아 산과 들을 쏘다녀야 하고 한두 송이 꺾어서는 안 되며 가장 보기 좋을 때 따야 하니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다. 1년 내내 약초와 꽃을 모으고 공정까지 합쳐 4차 겹술을 하는 술은 백화주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백화주는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송화대력주(松花大力酒), 불로주(不老酒)와 함께 천하 3대 명주 중 첫 번째로 꼽힌다. 학성강당은 조선 성리학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는 개인 서당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학문을 닦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주심포 팔작지붕의 한옥이 미려하게 펼쳐진다. 훈장은 상투 틀고 치포관(緇布冠)을 쓴 채 모시 한복을 입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방학 때면 100여 명의 아이들이 서당을 찾으며, 20명 정도 상주하며 사서를 배운다. 학비는 없다. 훈장은 화석 김수연[84세]이다. 기호학파의 맥을 잇고 있는 그는 조선 성리학의 뿌리를 지켜내고 있다. 유학을 전파하는 일은 김수연이 하고 서당살림은 막내아들 김종회[46세]가 맡는다. 40대 도인 김종회는 백화주를 담글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학성강당에서 250년 전부터 가양주(家釀酒)로 전수된 술은 크게 세 종류다. 백 가지 꽃을 넣는 백화주와 백 가지 약초를 재료로 한 백초주(百草酒), 백화주와 백초주를 섞은 백초화주(百草花酒)가 그것이다. 그중에 백화주는 백미라 할 수 있다. 백화주는 백 가지 꽃이 들어가는 술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임원십육지(林園十六誌)』에 등장하고, 빙허각 이씨가 1810년경에 쓴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백화주 빚는 법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백화주의 기원은 김종회의 13대 조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는 기묘사화와 함께 중앙정계를 떠난 조광조(趙光祖)의 제자 김호의(金好衣)였다. 그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학문을 끊지 말 것이며, 높은 벼슬에 오르지 말 것이며, 큰 부자가 되지 말 것이며, 문집을 만들지 말 것이며, 매년 섣달에 백화주·백초주 중 한 가지를 빚어 제사와 손님 받들기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유훈을 『가승보』와 『경주김씨세보』에 남겨 놓았다. 청빈하고 단아한 선비의 기품을 지키라는 것으로 해석되는 이 유훈을 학성강당이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학성강당은 누구든 찾아와 제 힘으로 먹을거리와 입을 거리를 마련하면서 무료로 한학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보통의 백화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성과 세심함이 깃든 학성강당의 백화주가 ‘기술’이 아닌 ‘정신’에서 비롯됐음을 깨우쳐 주는 대목이다. 학성강당 백화주의 정확한 이름은 백초화춘(百草花春)이다. 백 가지 약초와 백 가지 꽃이 어우러져 나온 술. 단지 여러 종류의 약초와 꽃이 들어갔을 뿐이고, 완성을 의미하는 일백 ‘백(百)’자를 붙인 것은 아닐까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학성강당의 백화주는 정확히 백 가지의 꽃과 약초가 들어간다. 먼저 약초만으로 백초주를 만들고 거기에 꽃을 넣어 백초화춘을 만든다. 술 이름 끝에 봄 ‘춘(春)’자를 붙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보통 품격 있는 술에 술 ‘주(酒)’자 대신 붙인다. 백화주가 완성되는 데는 대략 100일이 걸린다. 찬 기운이 대기를 덮는 10월 중하순쯤에 먼저 백 가지 약초로 술을 담근다. 상대적으로 다량의 누룩이 들어간다는 점이 여느 가양주와 다르다. 약초의 기운이 누룩의 성질을 눌러 버리기 때문이다. 백화주에는 사약(死藥) 조제에 쓰이는 극약도 넣는다. 술을 빚을 때 쓰는 물은 백 가지 약초를 바짝 말린 뒤 이를 가마솥에 넣고 청정수를 부어 10시간 달인 것이다. 한방에서 극독약으로 취급되는 초오(草烏)·부자(附子)·상륙(商陸)·대황(大黃) 같은 약재들도 한 움큼씩 들어간다. 백화주가 극독약을 피하지 않는 것은 상생상극의 조화를 이루도록 음양오행과 사유[보양·보음·보혈·보기]를 조화시키면 약효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화시키는 약재가 무엇인지는 학성강당 사람들, 그중에서도 백화주를 전수받은 사람만이 알고 있다. 상극·상생·중화 등의 배합을 고려해 양이 조절된 백 가지 약초가 찹쌀·누룩과 조화를 부려 술로 숙성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0일이다. 처음 3~4일은 뜨끈한 아랫목에서 익다가 이후로는 서늘한 윗목으로 옮겨진다. 물은 깨끗한 청정수를 쓴다. 약초의 힘이 물 기운을 모두 품어버리기 때문에 깨끗한 물로 담가야 된다. 술이라기보다는 탕약이라는 편이 나을 정도로 쓰디쓰고 검은 이 술은 충분히 익힌 다른 곡주 항아리에 부어 다시 20일 정도 숙성시킨다. 술에 술을 첨가시키는 이 같은 과정을 두 번 더 반복하면 백초주가 완성된다. 이 과정까지 80일 정도가 걸린다. 백 가지 꽃을 명주 포대기에 담아 백초주에 재워 두고 20일이 경과하면 백초화춘, 곧 백화주가 완성된다. 찹쌀 한 가마니[80㎏]와 백 가지 약초, 백 가지 꽃이 융합하여 100일 만에 나온 양은 약 두 말 반이다.
사삼주(순천시)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더덕(뿌리)을 한방에서 사삼이라 부른다. 인삼(人蔘)과 형태와 성분이 엇비슷해 일컫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삼은 인삼의 효능인 강장은 물론, 거담이나 위장을 튼튼히 해주는 약리성분을 갖고 있어 호흡기가 약하거나 위장이나 간이 부실한 사람에게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낙안이 민속마을로 지정된 1983년 무렵,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낙안 민속촌 보존회에서는 민속마을에 걸맞은 술이 필요하다는 의견 일치를 보았다. 그런데 누가 술을 빚을 것인지가 문제였다. 사삼주를 빚는 사람을 수소문했지만, 소문만 돌았지 실제 빚는 사람은 찾을 수가 없었다.이때 전통 복원에 나선 이가 낙안읍성 안에서 탁주 양조장을 운영하던 박형모씨였다. 박씨는 보성군 미력면에서 탁주 양조장을 운영하다, 1970년에는 낙안으로 옮겨와 탁주를 빚고 있었다. 1983년만 해도 막걸리 시세가 괜찮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굳이 새로운 술을 탐낼 처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마을이 문화재로 지정된 상황에서, 그도 한 가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막걸리 팔아 경제적인 여유도 있던 터라, 돈 번다는 생각 없이 사삼주 복원 작업에 착수했다. 승주군청의 추천으로 순천대학교 식품공학과에 기술 용역도 줬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결국 집에서 빚던 방식과 양조장에서 터득한 기술로 6년 만에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게 되었다. 박씨가 사삼주를 정부로부터 전통 민속주로 지정받아 본격 시판한 것은 1990년이다. 88년부터 낙안민속마을에 걸맞은 전통주를 개발하기 위해 관련 문헌을 뒤진 박씨는 시제품을 만들어 순천대 김용두 교수팀에 의뢰, 충분한 시험과정을 거쳤다. 지봉 이수광이 펴낸 승평(옛 순천지명)지에 낙안사삼주의 맛과 향취에 대한 설명이 있으며 고을 원님들이 즐겨 마셨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기록은 순천의 양반과 풍류객들이 기품있는 사삼주를 가양주로 빚어 마셨음을 설명해 준다. 순천 사삼주는 땅이 비옥하기로 이름난 낙안 들녘에서 재배한 토종 찹쌀과 질 좋은 더덕, 끓이지 않고 그냥 마셔도 배탈이 나지않는 낙안의 청정지하수가 어우러져야 제대로 빚어진다. 1차로 찹쌀 고두밥을 쪄서 누룩과 5대1 비율로 버무려 숙성실에서 사나흘 간 익혀낸다. 여기다 2차로 다시 더 많은 양의 고두밥과 누룩·맑은 물을 더해서 혼합, 숙성시키고 술 내리기 6일 전에 생 더덕즙을 넣어 3~4일간 섭씨 5도가량의 상온저장을 거치는 등 완제품까지는 20~25일이 소요된다. 이같은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 더덕의 효능이 그대로 살아 있는 사삼주가 완성된다.
삼지 구엽주(완도군)
주세법 상 리큐르로 완도군 약산도에서 건강을 위해 전통적으로 만들던 민속주다. 이름 그대로 삼지구엽초가 들어가는데 정작 색깔은 대추가 들어가서 빨간색이다. 담금주 계열이라 45~50도로 도수가 매우 높다.
아랑주(영광군)
청주 계열의 지방 토속주이며, 고려시대 원 간섭기때 몽고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화주 또는 과하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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