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부터는 충청도의 전통주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충청도 역시 아주 다양한 전통주들이 있다. 아마 대한민국의 모든 전통주를 모두 맛보고 싶다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다양한 전통주를 조금이나마 알리고자 이 글을 작성해 본다. 충청도의 전통주 중 이번 글에서는 가야곡왕주, 계룡백일주, 구기자주, 금산인삼주를 소개한다.
가야곡왕주(논산시)
가야곡왕주는 조선 말기 곡주의 규제가 완화되자 명성왕후의 친정인 여흥민씨 집안에서 집안 대대로 전해 오는 곡주와 조선시대 중엽에 성행했던 약술을 접목시켜 왕실에 진상하던 술에서 유래되었다. 후일 가야곡왕주는 여흥민씨 민재득이 딸인 도화회에게 전수하였고, 도화회는 현재 제조자인 딸 남상란에게 전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민재덕은 가야곡왕주에 들어가는 약재가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의해 궁중에서 만병치료제로 사용되는 것을 알고 가야곡왕주에 사용되는 재료를 『동의보감』 처방에 맞게 제조하였다. 가야곡왕주에 사용되는 재료는 논산에서 나는 쌀, 논산 가야곡 150m 암반수, 야생국화(일명 구절초), 구기자, 참솔잎, 홍삼, 매실 등과 집에서 직접 띄운 자가누룩 등이다. 특히 가야곡왕주에 들어가는 누룩에는 매실을 넣어, 누룩 특유의 퀴퀴한 맛을 없앤다. 제조는 지에밥에 자가누룩 위에 각종 약재를 섞어 덧술을 빚고, 그 덧술과 밑술을 혼합시켜 상온에서 100일 동안 숙성한다. 가야곡왕주 특유의 은은한 약재 향과 누룩의 향이 어우러져 향긋하면서도 혀끝을 감도는 감칠맛이 난다. 예전에는 술을 걸을 때 보자기를 사용하였으나, 요즈음은 영하 5°C에서 얼려 48시간 뒤에 여과하는 냉동 여과 방식으로 제조한다. 이렇게 제조하면 숙취의 원인물질(아세트알데히드)이 제거되어 많이 마셔도 숙취가 덜하다. 가야곡왕주는 표준화된 제조법으로 만들어지며, 규모를 갖춘 제조장에서 상업생산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고유 전통주로 인정을 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으며,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57호 종묘대제에 제주로 지정되어 매년 제례의식에 사용되고 있다. 2000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서울2000) 공식 지정 만찬주로 사용되었다.
계룡백일주(공주시)
계룡 백일주는 본래 궁중에서 빚었던 술이었으나 조선 인조 때 제조법을 하사받은 연안 이씨 가문에서 전승되어 온 전통주이다. 백일주는 술이 완성되기까지 100일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미자, 황국, 솔잎, 진달래꽃 등이 첨가되어 맛과 향이 뛰어나 신선주라고도 불린다. 1989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계룡 백일주는 조선시대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는 전통주이다. 광해군을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인조가 왕위에 오르게 되는 인조반정 사건이 궁중에서 빚었던 백일주가 민가에 전승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왕위에 오른 조선 16대 왕 인조는 반정에 성공한 후 공신인 이귀에게 백일주 양조비법을 하사하였고, 그 후 연안 이씨 가문에서 400년간 전승되어 왔다. 계룡 백일주는 첨가되는 황국화, 진달래꽃, 오미자, 솔잎 등의 채취 시기가 따로따로이고 채취방법도 까다로워 대중적이기보다는 가문의 제사 때나 올리는 귀한 술이었다. 1989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제7호로 지정된 후에야 비로소 일반 사람들에게도 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계룡 백일주의 기본 재료인 누룩은 찹쌀과 통밀을 갈아 반죽하여 발효시켜 만든다. 잘 띄운 누룩과 찹쌀가루로 쑨 죽으로 밑술을 만들어 1개월 정도 발효시킨 다음 본 술을 빚는다. 본 술은 찹쌀로 고두밥을 지어 식힌 다음 물과 함께 잘 건조한 황국화, 솔잎, 오미자, 진달래꽃을 섞어 70일간 발효, 숙성시킨다. 이처럼 밑술 발효 기간 30일과 본 술이 익어가는 70일을 합해 100일이 걸린다고 하여 백일주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현재 충청남도 공주시 봉정동에서 주조되는 계룡 백일주는 알코올 도수 16도, 30도, 40도의 제품으로 생산되고 있다. 전통 방식에 따라 100일간 저온 발효 숙성시킨 알코올 도수 16도의 백일주는 감미롭고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목 넘김이 일품이다. 예로부터 그 맛에 취해 계속 마시다 보면 신선이 된다고 하여, 또 다른 예로는 신선들이 먹는 술처럼 뛰어나다고 해서 신선주라고도 불리었다. 알코올 도수 30도와 40도의 백일주는 백일주를 증류시켜 만든 일종의 소주로 목젖을 건드리는 칼칼한 맛과 진한 감칠맛이 뛰어나다.
구기자주(청양군)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된 청양 구기자주는 청양의 대표적 특산물인 구기자를 재료로 만든 청주류의 일종이다. 구기자 이외에 두충과 국화, 감초와 같은 약재가 들어가 향이 그윽한 보양주로서도 손색이 없다. 알코올 도수 16도의
구기자주는 구기자 특유의 향과 새콤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달콤함이 감도는 것이 특징이다. 구기자주는 기본적으로 쌀과 누룩 그리고 물로 빚는 청주류이다. 여기에 더하는 재료로 구기자나무의 뿌리와 잎, 열매를 모두 사용하고 감초와 국화,
두충껍질과 국화 등을 넣어 만든 보양주인 약주(藥酒)의 범주에 속한다. 청양 구기자주는 충남 청양의 하동 정씨 집안에서 약 150여 년 전부터 빚어 온 집안의 내림술로서의 전통을 가진 가양주라고 볼 수 있다. 충청남도 청양군은 전국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구기자 명산지다.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청양 구기자는 인삼, 하수오와 함께 3대 보약재로 꼽힌다. 구기자는 피로회복과 해열, 고혈압 예방, 기침방지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 30호로 지정된 구기자주는 구기자뿐 아니라 국화를 넣어 향이 좋은 가향주이면서 약용약주로서의 특징을 함께 가지고 있는 술이다. 완성된 구기자주는 알코올 도수 16도로, 구기자 특유의 향이 있는 데다 새콤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달콤함이 도는 것이 특징이다. 맛과 향이 뛰어나고 약리적 특성을 살린 충청남도 청양구기자주는 구기자의 건강성을 잘 알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인 술이 될 수 있다. 청양구기자주는 하동 정씨 종부인 전통식품명인 제11호 임영순 보유자가 전승받아 민속주로 지정받았고 현재 며느리 최미옥씨가 계승하여 활동하고 있다.
금산인삼주(금산군)
불로장생의 명약 ‘인삼’으로 빚어내는 ‘금산 인삼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민속전통주다. 신비한 약효 때문인지 술을 먹은 뒤에도 숙취로 인한 어려움을 겪지 않고 한잔 술에 배어나는 알싸한 인삼향과 혀끝에 감치는 맛은 여느 명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인삼주는 백제시대부터 제조된 것으로 전해지나 본초강목(本草綱目) 등에는 1399년 도승지와 이조판서를 지낸 김문기(金文起) 가문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금산 인삼은 예부터 ‘선약’ ‘불로장생의 영약’ ‘생명의 뿌리’라고 일컬어졌다. 개성 인삼이 고구려 인삼을, 풍기 인삼이 신라 인삼의 맥을 잇고 있다면 금산 인삼은 백제 인삼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백제 인삼을 원료로 빚어내는 금산 인삼주는 삼남지방에 널리 알려진 명주로 그 맛과 품질에 있어 전통과 품격을 자랑하고 있다. 금산 인삼주는 조선시대 사육신 중 한 분인 김문기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던 것을 18대 후손인 김창수씨가 모친과 조모로부터 전승받아 현재 계승하고 있다. 금산 인삼주의 제조비법과 그 맛은 조선시대 ‘임원십육지’와 중국의 ‘천금방’, ‘본초강목’에도 나와 있고 김창수씨 집안의 가전문헌인 ‘주향녹단’ ‘잡록’에는 인삼을 넣어 술을 빚고 그 술을 제사 때 사용하는 제주와 가양주로 썼다고 전해져 온다. 금산 인삼주를 기존의 인삼주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제조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삼주가 인삼자체에 소주를 부어 우려낸 침출주라면 금산 인삼주는 전통 발효주로 분류된다. 쌀과 누룩에 인삼을 분쇄해 넣고 저온(18~22도) 발효시켜 100일간 숙성시킨다. 그래서 금산 인삼주에는 인삼이 없다. 술 속에 인삼을 그대로 녹여 놓았기 때문이다. 금산 인삼주의 주원료는 인삼·쌀·통밀이며 솔잎을 약간 넣는다. 여기에 사용되는 인삼은 5년근 이상의 인삼이 쓰이며 용수는 물맛이 좋고 예부터 피부병을 낫게 하는 효능이 있다는 금성산 기슭의 약수를 사용한다. 제조기간은 밑술제조에 10일, 술덧을 담근 후 주발효와 후발효에 60일, 채주하고 숙성하는 기간 30일 등 모두 100일 가량이 소요된다. 오래 숙성할수록 향과 맛이 더해져 주질이 더욱 좋아진다. 금산 인삼주에는 현재 인삼약주와 인삼증류주 2가지가 있다. 술독에 100일간 발효시켜 채주한 다음 이것을 짜내면 알코올농도 12.5도짜리 인삼약주가 되고 그것을 다시 수증기로 끓이는 소주내림을 거치면 43도짜리 인삼증류주가 된다. 지금은 거대한 탱크에서 인삼주를 끓여내고 있지만 대량생산 이전에는 큰 항아리에 불을 지펴 증류했다. 최근에는 여성 애주가들을 겨냥해 홍삼을 주원료로 한 알코올농도 15도짜리 홍삼주도 개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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