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고기 중에서도 살코기가 가장 많은 부위인 닭가슴살과 닭다리를 매운 양념에 재워서 야채, 고구마, 떡 같은 부재료를 넣어서 석쇠에 구워 먹거나 철판에 볶아먹는 요리이다. 요리명은 고유 명사이기 때문에 외국어로는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Dakgalbi'라고 쓴다. 실제로 이렇게 표기한 식당도 있다. 한국 바깥에서 이 음식이 유의미하게 인기 있는 일본은 タッカルビ로 표기한다. 닭갈비는 순살 닭갈비(닭다리살)와 보통 닭갈비(부위는 날개와 갈빗살)의 두 가지에서 택일하여 고를 수 있고, 내장 부위도 별도로 주문할 수 있다. 분량을 셀 때 '대'라고 하는 특이한 단위를 사용하는데, 닭갈비 1대는 닭다리 하나 혹은 닭가슴 반쪽을 발라내었을 때 나오는 살코기의 분량이며, 철판은 2대, 숯불은 3대를 합쳐서 1인분으로 친다. 곁들여먹을 찬거리로 동치미를 주기도 한다. 닭갈비를 다 먹을 즈음에는 식사를 시키는데, 볶음밥과 볶음 국수(사리)의 두 가지를 택일하거나 섞을 수 있다.
한국 요리 닭갈비의 명칭
사실 닭갈비는 이름대로 닭의 갈비살을 쓰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매장에서는 닭갈비를 만들 때 닭다리살, 그중에서도 닭다리보다 그 위쪽 부위인 넓적다리(Thigh肉, 싸이육) 쪽을 주로 쓴다. 이는 가격도 닭다리보다 저렴하며, 닭다리와 달리 힘줄이 없어 더 부드럽기에 양념에 재워 익힌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뻑뻑한 식감의 닭가슴살에 비해 먹기 편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전문적인 제품 외에 가정에서 조리하는 식의 염가형으로 만들 때는 닭가슴살만으로도 만들 수 있다. '먹기는 힘들고 버리기엔 아깝다'는 뜻의 계륵이라는 고사성어도 있듯, 만약 정말 닭의 갈비뼈로 만들었다면 먹기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닭의 갈빗살은 안쓴는 이 음식에 닭갈비라는 명칭이 붙었을까?? 이 요리가 닭갈비라는 이름으로 퍼져나간 이유에는 여러 설이 있다. 첫 번째 설은 처음 이 요리가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글자 그대로 닭의 갈비살이었다가 변했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최초의 닭갈비는 글자 그대로 갈비뼈(肋骨)가 붙어있는 닭의 갈빗살을 썩둑썩둑 썰어서 매운 양념에 재워서 석쇠로 된 넓은 불판에 떡, 야채와 함께 구워 먹었다. 소득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대량으로 조리하기에 편하게끔 철판을 쓰고, 먹기 편하도록 닭다리살(순살)을 쓰는 쪽으로 변했는데 명칭은 그대로 유지되어 퍼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설은 '숯불 돼지갈비'처럼 뼈가 붙어있는 고기를 양념이 되어있는 형태로 화롯불에 구워 먹어서 <'돼지갈비의 닭 버전' → 줄여서 '닭갈비'>가 되었을 수도 있다. 토끼도리탕처럼 닭도리탕에서 재료가 바뀌어도 이름은 그대로인 예가 존재하는데, 닭갈비 역시 이런 명명법을 따랐을 것이라는 이야기. 그래서 지역에 따라서는 닭불고기라고도 부르기도 하며 이마트에서 닭불고기라고 파는 그것이 이것이다. 두 번째 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 중 하나는 닭갈비를 세는 단위이다. 춘천 닭갈비는 고유의 단위로 '대'라는 것을 쓰는데, 2대가 1인분이다. 1대는 닭다리 하나를 소나 돼지의 갈비처럼 포떠서 뼈에 붙여놓은 것을 의미한다. 부위가 닭다리일 뿐, 갈비를 손질하는 것과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덧붙여서, 닭다리는 소나 돼지의 갈비와는 달리 뼈에 살점이 붙어있지 않으므로, 여기서 뼈를 제거하면 순살 닭갈비가 되므로, 순살 닭갈비로의 전환은 가게 입장에서나 닭고기를 손질해서 전달하는 중간 도매상 입장에서나 추가 비용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닭뼈에서 우러나오는 맛이 있다는 주장 때문에, 순살 닭갈비를 거부하는 가게 주인들이 생각보다 꽤 많아서, 완전히 받아들여지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한국 요리 닭갈비의 역사
1950년대 말~1960년대 초 강원도 춘천 요선동의 한 술집에서 술안주 삼아서 닭의 갈빗살을 양념에 재워서 연탄불에 구워 먹은 것이 그 시초였다. 본래 닭갈비는 양계장이 많던 홍천과 춘천에서 시작되었다. 최초로 유래한 춘천식은 숯불에 석쇠를 놓고 양념된 닭의 갈빗살을 구워 먹는 방식이었다. 이 숯불 닭갈비가 소양강댐 건설 당시의 인부들과102 보충대를 비롯한 군부대 장병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춘천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970년대 초에는 닭갈비 1대의 값이 100원이라 '서민 갈비', '대학생 갈비'라고 불렸다. 춘천에는 여전히 초창기처럼 숯불구이 닭갈비를 하는 집도 있다. 주로 소양강댐 언저리에 있는 닭갈비집 몇 군데가 숯불구이식을 하고 있으며, 중앙로 인근에도 숯불식 닭갈비집이 한 군데 있다. 이런 가게는 숯불 닭갈비라고 따로 표시하는 편이다. 그렇게 숯불 닭갈비가 춘천 전역으로 퍼질 즈음에, 일본식 철판구이가 한국에 잠깐 유행했었는데, 닭갈비도 이에 영향을 받아서 숯불 석쇠보다 대량 조리에 용이한 원형 철판으로 조리 도구의 형태가 바뀌었다. 하지만 철판식 닭갈비는 기름을 많이 넣지 않으면 바닥에 눌어붙는다. 서울에서는 이것을 무시하고 조리하지만, 춘천 닭갈비는 넓적한 철판으로 그을음을 긁어내며, 이것이 외지인들에게는 더럽게 보여서 호불호가 있다. 철판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이후에는 레시피와 양념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철판식 춘천 닭갈비는 주로 고추장이나 된장 등을 섞은 막장 비슷한 양념이었고, 파를 조금 넣는 정도였다. 이 시절의 양념의 레시피 자체는 오징어 양념 숯불구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후 철판의 이점을 살려서 양을 불리고, 철판식으로 전환하면서 늘어난 닭갈비의 기름기를 중화하는 채소를 넣는 시도가 이어졌고, 깻잎, 배추 등의 과도기를 거쳐서 1990년 즈음에는 양배추를 넣는 것이 상식으로 자리 잡는다. 양배추는 단맛이 나는 채소이고, 고기가 익기 전에 닭기름을 머금으며 빨리 익어서, 닭갈비가 익는 걸 기다리며 집어먹을 수 있어서 인기가 좋았다. 덧붙여서, 이후 전국으로 퍼진 닭갈비와는 달리 이때의 양배추는 두꺼운 줄기도 그냥 썰어서 같이 줬다. 양배추가 추가된 것은 나비효과를 낳았다. 가게 입장에서는 고기를 조금 줄여도 양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후 닭다리만 제공해도 양이 충분하게 되면서 순살 닭갈비가 등장하는 기반을 제공한다. 또한 양배추는 그때까지만 해도 꽤 매웠던 닭갈비 양념을 덜 맵게 해주는 이점도 있었다. 이 시기에는 양념을 덜 맵게 해 달라는 건 불가능하였고, 양배추를 더 넣어주거나 혹은 내장을 주문해서 맵기를 조절하는 식이었다. 이후 닭갈비가 전국으로 퍼지면서 닭내장은 빠지게 되는데, 양배추가 없었다면 호불호 갈리는 닭내장이라는 한계점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 이후의 닭갈비 역사는 후평동 인공폭포를 제외하고는 절대로 서술할 수가 없는 수준이다. 춘천의 90년대 닭갈비 요식업계를 지배하다시피 한 후평동 인공폭포의 모 닭갈비집에서, 양념에 양파를 갈아 넣는 레시피를 개발했다. 그러고 나서 1994~95년경에 같은 음식점에서 양배추와 양파와 같은 논리로 고구마를 추가하였고, 레시피의 차별화를 위해서 떡볶이 떡을 추가하였다. 또한 처음으로 떡볶이 떡을 이용해서 부분 유료화를 시도했는데, 반발이 꽤 컸지만 결국 자리 잡게 된다. 심지어 닭갈비에 당연하게 따라 나오는 단맛 나는 동치미를 제공한 것도 이 집이 처음이다. 한 가게에서 이만한 혁신이 쏟아진 이유는 가게를 운영하던 주인이 인근 부안 국민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어머니들이 모이던 에어로빅장에서 많은 피드백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의 혁신은 그 직전까지 몇 년간 파리를 날리던 바로 옆집으로 옮겨간다. 여기서 삶은 계란을 넣는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그리고 닭갈비 양념에 카레를 넣는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이 양념은 처음에는 호불호가 있었지만, 해당 가게를 큰 성공으로 이끌고, 2천 년대 초반에 전국으로 닭갈비가 퍼질 때는 전국 표준 레시피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뼈 없는 닭갈비도 출현한다. 확실하진 않지만 뼈없는 닭갈비는 명동 먹자골목에서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춘천 닭갈비가 유명해지며 서울, 경기에 전래되자, 간편히 먹을 수 있는 뼈 없는 닭갈비가 표준이 되었다. 2010년대가 오기 전에는 매운 양념을 중화시킬 수 있도록 치즈를 곁들여 먹는 형태도 나타났다. 서울에서 개발된 이 치즈 닭갈비 레시피는 이후 일본으로 넘어가서 큰 인기를 끈다.
이후 전국으로 퍼지면서, 계란이나 고구마도 부분 유료화가 되었고, 다른 지역에서는 바닥의 그을음을 긁어내지 않기 위해서 호일을 깔거나 기름을 더 많이 붓게 된다. 또한 춘천에서는 명동 먹자골목을 제외하면 우동면을 사리로 쓰는 것이 상식이었고 사리와 밥을 동시에 주문할 수 있었으나, 전국으로 퍼지면서 춘천 명동 먹자골목처럼 '덜 눌러 붓고, 기름기를 덜 머금어서 느끼하지 않은' 쫄면으로 바뀌게 된다. 과거에는 춘천 사람들이 외식할 때 닭갈비를 즐겨 먹어서 다른 동네보다 소갈비집, 돼지 갈빗집이 더 적었다. 그러나 닭갈비 가격이 돼지갈비 가격 정도로 올랐기 때문에 춘천 사람들도 예전과는 달리 그다지 즐겨 먹지는 않는 음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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