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여러 부위를 넣고 끓여내 밥과 함께 내놓는 국이다. 서울특별시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다. 사골과 도가니를 위주로 양지를 주로 국거리로 쓰며, 10시간 정도 가열하면 고기와 뼛속에 있는 성분이 흘러나와 국이 유백색을 띠게 된다. 삶은 소면을 같이 넣기도 한다. 식당에 따라서 다르지만, 처음부터 밥을 탕에 말아서 내놓기도 한다. 이것을 토렴이라고 하는데 밥에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내는 것을 몇 번 반복해서 밥을 따스하게 데우고 간을 배게 하는 것이다. 파를 자주 띄우는데, 이유는 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 특히 전통식으로 하는 설렁탕집에 가면 누린내 때문에 먹기 다소 거북한 경우도 있다.
설렁탕의 유래
선농제 기원설
흔히 퍼진 설로는 선농단 설이 있는데, 이 설에 따르면 조선 시대 선농단[4]에서 조선의 왕이 행사 및 제사 의식을 진행하고, 제사가 끝난 후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우골(牛骨)을 고운 뽀얀 소고기 국물을 나눠주고 거기에 밥을 말아먹었던 것이 시초로 이를 통해 사람들이 선농단에서 만들어져 먹게 되었다는 탕(湯) 음식이라고 하여 선농단의 '선농(先農)'을 본떠 '선농탕(先農湯)'이라 불렸다가 후에 발음이 더 쉬운 '설롱탕'을 거쳐 '설렁탕'으로 바뀌어 불렸던 것이라 한다. 이 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설농탕'이 (현대에도 있는 상호 '신선설농탕' 등) '선농탕'이 '설렁탕'으로 변하는 중간단계의 발음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 설이 발전하여 고기를 좋아한 임금 세종이 친경 이후 만든 음식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선농단에서 친경을 끝낸 후 잔치를 열었던 것은 맞지만, 이 설이 등장한 것은 1924년에 신문기사에서 처음 등장하고, 조선 시대에 쓰인 조선왕조실록 같은 책이나 일반 문헌에서는 존재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당시 농업사회였던 조선에서는 소가 굉장히 귀했기에 국가 단위에서 소를 잡는 것을 금기시했다. 더군다나 친경이라는 매우 엄한 규범에 따라 진행되는 행사에서 왕이 직접 부리는 소를 잡아서 국을 끓인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조선요리학이라는 책 자체가 사료로서의 가치는 크게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예법을 중요시 했던 조선시대에는 문묘의 제사를 위해 소를 반촌에서 매일 도축했다는 기록도 있으므로, 선농제의 제사를 위해 소를 잡는다는 게 생각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수 있다. 증거가 비록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기록으로 등장하지만, 많은 일반인들이 정설로 알고 있는 설이다. 사실 학자들 사이에선 의견이 갈리지만, 다른 설들도 증거가 명확하게 있진 않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가장 그럴듯한 스토리가 있는 이 설이 지지받고 있다. 제기동의 설렁탕 식당들 중에는 아예 선농탕이라는 이름으로 음식을 팔기도 하며, 동대문구에서 운영하는 제기동 선농단 역사문화관 역시 설렁탕이 선농단 기원이라고 설명한다.
몽골 기원설
육당 최남선에 의하면, 몽골에서 맹물에 소를 삶아 먹은 음식을 술루라고 불렀고 이것이 고려로 넘어오면서 설렁탕의 어원이 된 것이라고 한다. 이 설 또한 검증된 것은 아니나, 1970년대에 설렁탕의 선농단 기원설에 대해 국어학자가 반박하면서 대신 이 설을 지지했던 기록이 보인다. 덧붙여 이 슐루의 한자어 표기는 공탕(空湯)이라고 되어 있어 곰탕 또한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고 이야기된다. 이 학설에서 중점적 요소가 되는 '술루'(설루 또는 슐렁이라고도 불린다)에 대해서 조금 더 부연하자면 술루란 과거 몽골 제국의 정복활동 당시 몽골 기마대가 식사를 할 때 먹은 음식이 원형으로 커다란 솥에 물과 곡물가루, 소나 말 등의 뼈와 고기를 넣고 끓인 일종의 고깃죽이다. 기마대 중심으로 빠른 기동력을 살렸던 몽골제국은 일반적인 보급선을 유지하기가 어려웠고 장기간의 원정에 짐이 되는 식량을 동반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에 소나 말 등을 끌고 다니며 방목하다가 끼니때가 되면 소나 말을 잡아서 말에 싣고 다니던 곡물가루와 같이 끓여 먹는 것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했다. 이러한 몽골 제국군의 식습관이 후대에도 영향을 미쳤고, 몽골의 침략과 고려 후기에 유행한 몽고풍의 영향으로 한국에 들어왔다는 설이다. 지금 전해지는 술루는 양고기와 양 창자를 함께 넣고 끓인 고깃국의 일종으로 현재의 설렁탕과는 실제 모습이 확연하게 다르다. 다만 오래도록 불교국가라서 도살법도 모르던 고려 시대 사람들이 고기 종류까지 따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 몽골에서는 반탕(bantan)이라는 이름의 음식이 설렁탕의 조리법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비슷한 음식인 곰탕과 설렁탕의 구분
설렁탕은 곰탕과 비슷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곰탕은 고깃국물 설렁탕은 뼛국물이라는 말도 있듯이, 설렁탕은 뼈와 도가니를 많이 넣고 끓이기 때문에 국물이 탁하고 희고 뽀얀 색깔이 특징이다. 하지만 시판되는 레토르트 식품 중 곰탕이라고 쓰여있는 것은 사골국물 위주라서 탁한 국물의 설렁탕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곰탕의 경우 사골을 사용하더라도 고기와 같이 끓이다 보면 색깔이 다시 투명해진다. 이처럼 곰탕 혹은 곰국과 헷갈리는 이유는 지역에 따라 설렁탕을 곰탕 혹은 곰국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상도 지방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뼈를 고운 뽀얀 국물을 '곰탕'이라고 부른다. 경상도 지방에선 영천곰탕, 진주곰탕, 현풍곰탕 등이 1950년대 즈음 거의 비슷한 시기 뽀얀 곰탕을 상업화하여 내놓은 것을 보면 경상도에선 이런 스타일의 곰국이 곰탕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뼈나 고기 등을 오래 끓여서 진액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끓이는 국을 곰국이나 곰탕이라고 한다. 이는 '고다'는 말(고으다 『구급간이방언해』[1489])에서 '고은 국', '곰국'에서 유래된 것이다. 한자어로 해석하여 '고(膏, 기름)를 낸다.'고 하는 설이 있지만 문헌적 근거는 없다. 곰탕 가운데서도 한양 지방에서 특화된 조리법으로 뽀얀 국물로 우려내는 탕을 특별히 설렁탕이라고 부른다. 즉 설렁탕은 곰탕의 하위개념이다. 일반적으로는 설렁탕은 사골이나 도가니 등을 고운 뽀얀 국물을, 곰탕은 하동관이나 나주곰탕에서 보듯 고기나 내장을 삶은 맑은 국물이라고 구분하면 된다. 그러나 뽀얗고 하얀 국물이라도 사골 곰탕이나 소머리 곰탕이라고 부르는 것도 있는데 곰탕이 넓은 개념이므로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곰탕과 설렁탕을 구분하기 힘든데, 그 이유는 요식 업체들이 판매 중인 곰탕과 설렁탕이 위와 같은 사전적 정의와는 다르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곰탕과 설렁탕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먹어봐서는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곰탕은 거부감이 높은 기름을 줄이고 설렁탕 국물처럼 사골 국물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고, 설렁탕도 내장이 냄새가 나고 유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빠지고 고기만 들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차이점을 꼽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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