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는 흔치 않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울 음식으로 평가되는 탕평채와 종로 육회에 대해 소개한다. 둘 다 생소하거나 낯설 수도 있지만 이 기회에 한번 맛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탕평채
탕평채(蕩平菜) 또는 묵청포(-淸泡), 청포묵무침은 한국의 궁중요리이다. 채 썬 청포묵, 쇠고기, 녹두싹, 미나리, 물쑥 등을 넓은 그릇에 담고, 간장, 참기름, 식초로 고루 버무린 후, 황백지단, 김, 고추를 가늘게 채 썰어 고명으로 얹어낸 묵무침이다. 탕평채는 대개 늦봄에서 여름 사이에 먹는다. 녹두녹말로 만든 묵과 볶은 쇠고기, 채소류 등을 함께 버무린 음식으로서 봄철의 별미로 감촉이 매끄럽고 맛이 새콤해서 식욕을 돋운다.
탕평채의 역사 및 특징
탕평채의 역사 : 1849년에 편찬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탕평채는 그 당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 제21대 왕인 영조가 즉위했을 당시는 예전부터 지속되어 온 붕당 간의 대립이 치열한 시기였다. 영조는 각 붕당 사이의 첨예한 대립과 정쟁을 해소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으며, 이를 위해 각 붕당의 인재를 고루 평등하게 등용하는 탕평책을 실시하였다. 탕평책의 경륜을 펼치는 자리에서 등장한 음식이 탕평채이다. 탕평채에 들어가는 재료의 색은 각 붕당을 상징했는데, 청포묵의 흰색은 서인을, 쇠고기의 붉은색은 남인을, 미나리의 푸른색은 동인을, 김의 검은색은 북인을 각각 상징했다. 각각 다른 색깔과 향의 재료들이 서로 섞여 조화로운 맛을 이뤄내는 탕평채는 영조의 탕평책의 상징성을 드러낸다.
탕평채의 특징 : 녹두로 만든 청포묵, 쇠고기, 미나리, 김은 반드시 들어가며, 이는 각 붕당을 상징하는 사방신의 색과 일치한다. 버섯(보통은 표고)과 숙주나물이 들어가기도 한다. 사실 녹두에 싹을 틔운 것이 숙주나물이니 잘 맞는 셈이다. 갖가지 재료들이 한데 섞여 있는 것에 착안해서 당파 대립을 최소화하는 것을 기도했다고 한다. 먹을 때에는 비빔밥처럼 골고루 섞어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음식 문화 권위자인 주영하는 과거에는 김이 들어가지 않았으니 탕평채가 사색 당파를 상징한다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고, 조재삼의 <송남잡지>라는 책에서 오히려 영조 시대 좌의정 송인명이 탕평채 파는 소리를 듣고 탕평 사업을 추진했다는 말이 있어 탕평책으로 인해 탕평채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탕평채라는 이름에서 오히려 탕평책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궁중 요리치고는 참 쉬운 조리법을 자랑한다. 아닌 게 아니라 묵에 재료를 넣고 무쳐낼 뿐인 요리로, '탕평채'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 다른 묵 무침 요리, 혹은 잡채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다만 먹을 때는 후딱 먹어치우기 쉽고 요리도 잘 무쳐서 내는 것 뿐이지만 (잡채류 요리가 그렇듯이) 재료를 하나하나 준비하는 것이 상당히 고된 노동이기 때문에 나름 중요한 요리 취급이다. 일단 묵 자체도 제대로 만들려면 대단히 고된 것이고, 탕평'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부들부들해서 잘 뭉개지는 묵을 가늘게 채 썰고 다른 재료들도 가늘게 준비하는 과정이 대단히 손이 많이 간다. 즉 탕평채냐 청포묵 무침이냐는 사실 묵을 얼마나 가늘고 예쁘게 채 썰었는가에 달려 있으며 제대로 만든 탕평채는 한정식 코스 요리 중 하나로 취급할 정도다. 녹두와 마찬가지로 콩의 종류인 동부를 사용한 동부묵이라는 것도 있는데, 동부 자체가 탄수화물 함량이 높기도 하고 또 보통 중국이나 동남아(보통은 미얀마)산 동부를 왕창 사용하기 때문에 대단히 싼 값에 묵을 만들 수 있다. 국산 청포묵과는 최소한 5~6배 가격 차이가 있다. 문제는 청포묵과 거의 구분이 안 된다는 것이다. 묵의 식감이야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 것이고 향의 차이가 조금은 있지만 무쳐 놓으면 거의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육회
육회(肉膾)는 회 요리 중 하나로, 가늘게 채를 친 고기를 전혀 익히지 않고 설탕, 소금, 간장, 마늘, 참기름, 배즙 등으로 만든 양념에 버무려 만든 한국 요리다. 지역마다 양념에 들어가는 첨가물은 약간씩 다른데 잣이나 달걀노른자를 얹기도 한다. 고기 요리가 대부분 그렇겠지만 육회는 술안주로도 제격이고 한정식에서도 나오곤 한다. 육회가 양념이 들어간 무침 형식으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회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회라고 불리는 이유는 본디 한국에서 회라는 것이 무침 형식이 주류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표준어 사전에서도 회를 양념에 무치지 않은 것으로 정의할 정도로 일본식 회의 영향으로 문화가 변했으나, 80~90년대 까지는 회 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회무침에 해당하는 음식이 식당에서 자주 나왔고, 2020년대에도 노년층에선 회를 먹을 때 무침으로 먹는 경우가 있다. 고기 종류는 기본적으로 쇠고기, 그 중에서도 우둔이 주로 쓰인다. 그 외에 식당이나 지역에 따라서 염소고기, 말고기, 고래고기, 당나귀고기도 육회로 쓰인다. 간혹 육류 대신 붉은살 생선을 육회 스타일로 차리기도 하며 다랑어, 참치나 방어 등이 있다. 고기 자체에 감칠맛이 있어 정말 신선한 고기는 소금이나 간장을 안 넣어도 좋다. 전라도 쪽에서는 보통 고추장을 넣는데 감칠맛이 퍼져서 식욕을 돋운다. 배즙을 안 넣는 경우라면 토핑으로 배채를 곁들이는 경우가 많다. 배즙을 넣는다면 설탕을 빼자. 은은한 단맛이 일품이다. 그런데 여기에 설탕까지 들어가면 자칫 잘못 조리될 시 당분에 절은 맛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토핑으로 깨소금도 자주 등장한다. 고기의 쫀득한 식감과 거기에서 퍼지는 감칠맛에 깨의 고소함이 섞이면 혀에 침이 코팅되는 감각이 제대로 느껴지고 냄새도 식욕을 자극한다. 노른자에 코팅되는 맛은 또 다르다. 노른자의 은은한 담백함과 끈덕이는 촉감에 한 번 만족하고 그 코팅을 뚫고 느껴지는 고기의 맛이 또 각별하기 때문. 이때는 양념을 적당히 해줘야 계란 노른자의 특성에 지지 않는다.
고래고기 등 다른 고기도 육회로 먹는 경우가 많지만 따로 이름을 붙이지 않고 육회라고만 하면 십중팔구는 쇠고기 육회를 말한다. 우둔, 사태 등 지방과 근막이 적고 값이 싼 부위를 쓰는데, 고기에 지방이 끼어있으면 지방이 녹지 않아서 식감과 풍미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대략 미디엄 레어 정도의 온도가 되어야 녹고 이때가 가장 맛있다고 하는 스테이크의 굽기 정도다. 하지만 우둔이나 사태는 질긴 편이고 지방이 전혀 없으면 조금 팍팍한 느낌이 나므로 유명한 집에서는 보통 우둔보다는 지방이 더 있고 조직이 부드러운 채끝살을 사용하는데, 그리 싼 부위는 아니라서 자주 먹기는 어려운 편이다. 가끔 정육식당 등에서는 꽃등심을 육회로 내는 경우도 있다. 등심과 갈비살 모두 육회로 만들 수 있으며 우둔이나 사태로 만든 것보다 맛있다. 다만 지방이 많아 많이 먹기는 부담스러우며, 익혀서 먹는 쪽이 부위의 특성을 더 살리기 때문에 하지 않을 뿐이다. 물론 안심으로 육회를 만들면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이겠지만 안심이 워낙 양이 적고 비싼 음식이라 자주 못 먹을 뿐이다. 아니면 소 갈비 바깥쪽과 앞다리 견갑골 사이에 있는 꾸리살은 담백하면서 매우 진한 육향을 내기에 육회로 쓰기 매우 좋은 부위이다. 좋은 부위로 만든 육회는 식감이 부드러우며, 양념도 자극적이지 않고 생고기라는 느낌이 없기 때문에 어린아이들도 좋아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물컹거린다', '찝찝하다' 등의 부정적인 의견과 '그냥 회의 일종일 뿐이고 가열한 고기와는 느낌이나 맛이 달라서 새롭고 맛있다' 등의 의견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돼지로도 육회를 만들기도 한다. 특수한 예로 임신한 암퇘지를 잡았을 경우 그 안의 태아 돼지를 통째로 갈아서 만든 애저회라는 것이 존재한다. 애저 스테이크처럼 엄청난 가격과 맛을 자랑한다고는 하지만 그 잔인성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대체제로 돼지 태반을 사용하기도 한다. 요리만화 《맛의 달인》에서 돼지 태반을 사용한 요리가 소개된 적이 있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닭으로도 육회를 만든다. 교외의 농장을 겸하는 식당에서는 주문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닭을 도축해서 회를 뜨기도 한다. 농장이 없는 일반 식당에서는 매일 잘 숙성시킨 신선한 닭가슴살을 손질해서 그때그때 회를 떠서 상에 올린다. 생선의 활어회와 선어회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닭 육회는 가슴살을 주로 이용하는데 식감이 무진장 단단하다. 닭의 친척인 꿩도 같은 방법으로 먹을 수 있다. 모래주머니(똥집)를 썰어서 함께 내놓거나 지역에 따라 닭발도 큰 뼈를 골라낸 후 잘 다져서 회 형태로 나오기도 한다. 육회만 먹는 경우가 많지만 전라도 쪽에서는 다른 요리에 육회를 곁들여서 먹는 경우가 많다. 전주나 진주에서는 비빔밥 위에 올려서 내기도 하며, 천엽과 간을 곁들이기도 한다. '육낙'이라고 해서 육회와 잘게 썬 산낙지를 잘 섞어서 내놓는 음식도 있는데, 이 음식은 주로 광주광역시나 전라남도 지역에서 먹는다. 목포 같은 지역에서는 육회와 산낙지 탕탕이에다 전복까지 썰어 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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