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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관광지19

덕수궁의 서양식 건축물의 역사와 구조[3-1] 덕수궁의 마지막 구분 지역인 서양식 건물의 건축물의 역사와 구조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덕수궁내 서양식 건축물에는 석조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중명전, 돈덕전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석조전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 대해 알아보겠다. 석조전(石造殿)은 덕수궁의 전각으로, 구한말에 지어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궁전이다. 중화전의 서북쪽, 준명당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 1897년에 건립하여 경술국치해인 1910년에 완공되어, 대한제국과 역사를 함께 했다. 근대에 지은 덕수궁에는 서양식 건물인 양관(洋館)이 여러 채 도입되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대한제국의 근대화를 상징하고 황제국으로서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해 지은 서양식 궁전이 석조전이라 할 수 있다. 동양의 전통 궁궐에서는 정전, 편전, 침전의 기능이 각각 .. 2023. 6. 28.
덕수궁 내 내조 영역 건축물의 역사와 구조[2-3] 이번 글에서는 저번에 작성했던 덕수궁 내조 영역 내 건축물 중 남은 두 건축물인 함녕전과 정관헌의 역사와 구조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덕수궁 함녕전(德壽宮 咸寧殿)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덕수궁에 있는 고종황제가 거처하던 침전이다. 1897년에 지어졌으며, 1904년 함녕전에서 시작된 덕수궁 대화재로 소실되었고 1906년에 재건되었다. 1985년에 대한민국의 보물 제820호로 지정되었다. ‘함녕(咸寧)’ 뜻은 ‘모두(咸)가 평안하다(寧)’이다. 《주역(周易) - '건(乾)' 괘 단사(彖辭)》에 나오는 “만물에서 으뜸으로 나오니, 만국이 모두 평안하다”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열강이 각축하던 시절에 국가 간에 평화롭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듯 하다. 정관헌은 대한제국의 황궁이었던 경운궁에 있는 건축물로서, 전.. 2023. 6. 24.
덕수궁 내 내조 영역의 건축물의 역사와 구조[2-2] 저번글에 이어 이번에도 덕수궁 내 내조 영역에 있는 건축물 중 석어당과 덕홍전에 대해 알아보겠다. 석어당(昔御堂)이라는 명칭은 ‘옛 왕이 머물던 집’이라는 뜻이다. 임진왜란으로 서울을 떠났던 선조가 1593년(선조 26)에 한양으로 돌아왔을 때 궁궐의 대부분이 소실되어 정릉동에 있는 행궁에서 머물던 전각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덕수궁 석어당의 1층에는 고종의 어필 현판이 걸려 있으며, 2층에는 1904년(광무 8)에 중건할 때 김성근(金聲根)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덕홍전은 원래 명성황후(明成皇后)의 혼전인 경효전(景孝殿)으로 건립되었으나, 1912년에 고종황제의 알현실로 개조된 이후 덕홍전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덕홍전으로 교체된 이후 고종은 이곳에서 외빈과 신료들을 접견하였다. 덕홍전은 .. 2023. 6. 21.
덕수궁 내조 건축물의 역사와 구조[2-1] 저번글에 이어 덕수궁의 내의 건축물 중 내조 영역 내 건축물에 대해 알아보겠다. 덕수궁의 내조 건축물에는 준명당, 즉조당, 석어당, 덕홍전, 함녕전, 정관헌이 있다. 이번글에서는 내조 영역 내 건축물 중 준명당과 즉조당에 대해 알아보겠다. 준명당은 석조전의 동쪽, 중화전의 서북쪽에 있으며 즉조당과는 복도로 이어져있다. 현판 글씨는 의정부찬정 박제순이 썼다. 준명당에서 '준명(浚眀)' 뜻은 '다스려 밝힌다', 또는 '다스리는 이치가 맑고 밝다'이다. 《서경(書經) - 고요모(皐陶謨)》 편에 나온 구절인 “날마다 세 가지 덕을 밝혀, 밤낮으로 소유한 집을 다스려(浚) 밝힌다(眀)."에서 따왔다고 한다. 즉조당은 인조가 왕으로 즉위한 곳이다. 영조가 후에 이곳을 들러 인조가 왕으로 즉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 2023. 6. 20.
서울의 궁궐 덕수궁의 역사[1] 덕수궁(德壽宮)은 서울 중구 정동(貞洞)에 있는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된 조선과 대한제국의 궁궐이다. 본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으로, 아관파천 이후 환궁하여 법궁으로 사용되다가 순종 즉위 후 궁의 이름을 현재의 덕수궁으로 변경하였다. 현재의 영역 외에 선원전, 홍원, 중명전 영역도 덕수궁의 영역으로 모두 이어져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축소되었다. 조선 초기 세조가 남편을 잃고 궁궐을 떠나는 맏며느리 수빈 한씨(인수대비)를 가엽게 여겨 개인 사저로 마련해 주었고, 이후 한씨의 차남 자산군이 보위에 오르게 되어 궁궐에 들어가자 장남인 월산대군이 물려받았다.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월산대군의 집을 임시로 왕의 거처로 쓰면서 궁이 되었다. 1608년 선조가 죽은 뒤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하였는데, 그.. 2023.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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