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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지86

서울의 궁궐 덕수궁의 역사 [2] 이전 글에서 덕수궁의 역사 중 조선 초기 ~ 법궁 시기까지 알아봤다면 이번 글에서는 화재 및 덕수궁 시기, 일제강점기 시기, 광복 그 이후의 시기에 대해 알아보겠다. 덕수궁 역사 중 화재 및 덕수궁 시기 국가의 재정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증축을 거듭한 덕수궁이었지만, 1904년 4월 14일 밤 10시경에 영선사(營繕司)에서 함녕전의 온돌을 수리하던 중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바람이 거센 까닭에 화재는 삽시간에 주변의 건물로 번지며 궁의 중심부를 집어삼켰다. 이때 정전인 중화전뿐 아니라 가장 오래된 건물인 즉조당과 석어당, 신주(神主)를 모셨던 경효전과 어진(御眞)·예진(睿眞)을 봉안한 흠문각(欽文閣)이 모두 소실되었다. 특히 고종은 즉조당을 두고 선조의 시어소 시절부터 전해져 온 것으로 서까래 하.. 2023. 6. 17.
서울의 궁궐 덕수궁의 역사[1] 덕수궁(德壽宮)은 서울 중구 정동(貞洞)에 있는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된 조선과 대한제국의 궁궐이다. 본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으로, 아관파천 이후 환궁하여 법궁으로 사용되다가 순종 즉위 후 궁의 이름을 현재의 덕수궁으로 변경하였다. 현재의 영역 외에 선원전, 홍원, 중명전 영역도 덕수궁의 영역으로 모두 이어져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축소되었다. 조선 초기 세조가 남편을 잃고 궁궐을 떠나는 맏며느리 수빈 한씨(인수대비)를 가엽게 여겨 개인 사저로 마련해 주었고, 이후 한씨의 차남 자산군이 보위에 오르게 되어 궁궐에 들어가자 장남인 월산대군이 물려받았다.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월산대군의 집을 임시로 왕의 거처로 쓰면서 궁이 되었다. 1608년 선조가 죽은 뒤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하였는데, 그.. 2023. 6. 16.
창경궁 내조 건축물의 역사와 구조 [2] 통명전은 창경궁의 침전이다. 사실 창경궁은 대비 등 왕실 가족들의 거주 공간 확보를 목적으로 지어서, 왕실 구성원들은 다른 궁궐에 있을 때와 다르게 비교적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건물을 사용했다. 그래서 창경궁 내전 건물의 경우, 전각의 주인을 뚜렷하게 구분하기 모호하며 통명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여러 기록을 볼 때, 주로 왕비와 대비 등 왕실 내 최고위급 여성들의 공간으로 많이 사용한 듯하다. 창경궁의 내전 전각들 중 위상이 가장 으뜸이었다. 《궁궐지(宮闕志)》에서 ‘통명전은 창경궁의 내정전(通明殿卽昌慶宮內正殿)’으로 표기한 것과, 영조가 통명전을 ‘내전의 법전(法殿)’이라 남긴 글, 그리고 《통명전 중건 상량문》에 ‘동쪽에 창경궁이 조성된 이후 내전은 통명전보다 높은 전각이 없다’라고 적혀.. 2023. 6. 14.
창경궁 내조 건축물의 역사와 구조[1] 창경궁 내조 영역 내 건축물로는 경춘전, 환경전, 통명전, 양화당, 영춘헌, 집복헌이 있다. 경춘전은 창경궁의 침전이다. 창경궁은 대비들과 왕실 가족들의 거주 공간 확보를 목적으로 지었기 때문에, 왕실 구성원들은 다른 궁궐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비교적 자유롭게 건물을 사용했다. 그래서 창경궁 내전 건물의 경우, 전각의 주인을 뚜렷하게 구분하기 모호한 점이 있으며 경춘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여러 기록 등을 볼 때, 대체적으로는 왕비와 대비 등 왕실 내 최고위급 여성들의 공간으로 많이 사용된 듯하다. 이름은 성종 시기 창건할 때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이던 서거정이 지었다. ‘경춘’은 글자 그대로 풀면 ‘햇볕(景) 따뜻한 봄(春)’이라는 뜻이다. 순조는 후술할 《경춘전기》에서 ''경(景)'은 큰 것.. 2023. 6. 13.
창경궁 외조의 편전 권역 내 건축물의 역사와 구조 창경궁 외조의 편전 권역 내 건축물에는 문정전과 숭문당이 있다. 문정전은 1483년(성종 14) 옛 수강궁 자리에 창경궁을 조성할 때, 왕이 공식적으로 신하를 만나 정사를 논하는 편전으로 건립된 건물이다. 건물 조성이 완료된 1484년(성종 15)에 서저정이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과 함께 문정전의 이름을 지어 올렸다. 창경궁은 대비들을 모시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궁궐의 규모가 비교적 작으며 격식을 갖추지 못한 부분이 있다. 특히 궁궐의 정문인 홍화문과 정전인 명정전을 잇는 축이 동서 방향으로 형성되어 동향을 하고 있는 반면, 정전과 맞닿은 편전인 문정전은 남향으로 축을 달리하고 있다. 원래 편전으로 건립되었다고 하나 실제 편전으로 사용된 기간은 매우 짧고, 조선후기 계속해서 혼전이 설치되어 ..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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