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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지

경복궁의 궁성 건축물과 외조 건축물

by 또바기벗 2023.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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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경복궁에는 다양한 건축물이 있다. 앞글에서 설명한 것 처럼 크게 4구역의 건축물로 구분되고 경복궁 내 건축물은 3구역으로 나뉜다. 오늘은 경복궁의 3구역중 궁성과 외조 구역의 건축물에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궁성에는 광화문, 건춘문, 영추문, 신무문, 동십자각이 있고 경복궁 내에는 동십자각을 제외한 4가지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외조구역에는 정전 권역, 편전 권역, 궐내각사 권역 3권역으로 구분됩니다. 정전 권역에는 흥례문, 영제교, 유화문, 기별청, 근정문, 근정전이 있고, 편전 권역에는 사정전, 만춘전, 천추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궐내각사 권역에는 수정전이 있습니다.

경복궁 궁성의 건축물

광화문 : 경복궁의 정문이다. 1395년(태조 4년) 처음 지어질 때는 사정문(四正門)이라 했다가 1425년(세종 7년) 광화문으로 개칭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으로 소실된 후 그대로 방치되었다가 1864년(고종 1년) 중건했으나, 일가 조선총독를 짓기 위해 1927년 건춘문 북쪽으로 이건한 후 6.25 전쟁을 거치면서 문루가 소실되었다. 이후 복원 공사에 들어가 1968년 12월 11일 준공했지만 원자리에서 조금 벗어나 있고 철근 콘크리트 구조라는 한계 때문에 2006년부터 다시 이전·복원 공사에 착수해 2010년 8월 15일에 준공했다.

건춘문 : 경복궁의 동문.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루가 있으며, 왕족·외척·상궁들이 출입하던 문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흥선대원군이 중건하면서 1865년(고종 2년) 12월 25일 상량했다. 여담으로 봄(春)과 동쪽(東)은 예로부터 세자를 뜻하는 말이었다. 건춘문 근처에 동궁전이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영추문 : 경복궁의 서문. 연추문(延秋門)이라고도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루가 있으며, 일반 관원들이 출입하던 문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흥선대원군이 중건하면서 1865년(고종 2년) 10월 25일 상량했다. 1926년 4월 27일 궁성 주변에 부설된 전차의 진동으로 인해 무너졌다가 1975년 원 자리에서 40m 내려간 남쪽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되었다. 2018년 12월 6일에 43년 만에 개방했다.

신무문 : 경복궁의 북문. 태조가 창건할 때는 없었으나 1443년(세종 15년) 궁성의 사대문을 맞추기 위해 건설했다. 다만 풍수지리적인 문제 때문에 자주 닫혀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신무문 바깥으로 경복궁의 후원과 연결되었지만 청와대가 들어선 다음부터는 경호 문제로 비공개되었다가 2007년 9월 29일 건청궁 복원 공사 완료에 맞추어 45년 만에 민간인에게 개방했다.

동십자각 : 궁성을 수비하는 망루로서는 경복궁에 현존하는 유일한 전각. 7단으로 이루어진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이 세워져 있다. 1867년(고종 4년) 지어졌으나 1924년 도로를 확장할 때 궁장을 헐면서 길 한복판에 섬처럼 놓이게 되었다. 광화문과 남쪽 궁장을 복원하면서 일제 때 헐려나간 궁장을 동십자각과 연결하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교통 문제 때문인지 실현되지는 않았다. 참고로 서쪽 맞은편에 있던 서십자각은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지을 때 철거되었는데, 이쪽은 복원하지 않고 남쪽 궁장을 서쪽 궁장과 맞바로 연결해버렸다.

경복궁 외조 건축물

- 정전 권역 내 건축물

흥례문 : 광화문을 지나면 나오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이다. 1395년(태조 4년) 지어졌으며 1426년(세종 8년) 홍례문(弘禮門)이라 했다가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867년(고종 4년) 중건하면서 창나라 건륭제의 이름인 홍력(弘曆)을 피휘하여 흥례문으로 개칭했다. 1916년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건설하면서 철거되었다가 85년 뒤인 2001년 10월 26일 복원되었다.

영제교 : 경복궁의 금천교이다. 1395년(태조 4년) 9월, 경복궁이 창건될 때 만들어졌고 세종 대에 ‘영제교(永濟橋)’라는 이름을 붙였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폐허가 되었으나 영제교는 돌로 만들어서 큰 훼손 없이 남아있었다. 이후 270여 년 간 방치되었다가 1865년(고종 2년)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다시 궁궐의 금천교 역할을 수행했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흥례문과 주변 행각이 철거될 때 같이 헐렸다가, 1990년대 경복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청사가 철거되고 흥례문 일곽을 중건할 때 복원되었다.

유화문 : 근정문에 들어서기 전 그 서쪽에 있으며, 궐내각사로 통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이다. 유화문도 흥례문과 마찬가지로 1916년에 철거되었다가 2001년복원되었다.

기별청 : 흥례문 서쪽 행각에 있으며 유화문의 북쪽에 있다.왕명을 출납하는 기관인 승정원에서 매일 발행했던 조보(朝報)를 만들던 곳이다. 흥례문과 마찬가지로 1990년대에 복원되었다.

근정문 : 근정전의 정문.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건물로 1867년(고종 4년) 중건되었으며 일곽의 행각과 함께 1985년 1월8일 보물 제812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초기의 임금들은 여기에서 즉위식을 거행한 다음 근정전의 옥좌에 앉아 문무백관의 하례를 받았다.

근정전 : 경복궁의 정전으로, 국가적인 대례를 거행하던 장소이다. 다포식 건축으로는 현존하는 것 중 국내 최대 규모이며, 2단의 석축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5칸의 2층 전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천장에 있는 금박 입힌 2마리의 목조 용 조각의 발톱이 7인 것이 특징이다. 1395년(태조 4년) 건설되었다가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867년(고종 4년) 중건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지을 때도 철거당하지 않았으며 1985년 1월 8일국보 제223호로 지정되었다.

- 편전 권역 내 건축물

사정전 : 왕의 신하들과 함께 정사를 돌보는 편전으로 사용하던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이다. 내부의 바닥이 마루였기 때문에 주로 여름에 사용했다. 1395년(태조 4년) 지어진 뒤 1553년(명종 8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중건했지만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모두 전소되었고, 이후 1867년(고종 4년) 중건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전각의 사방이 벽 없이 창과 문으로만 된 점이 특징이며, 내부의 어좌 위에는 운룡도가 있다.

만춘전 : 사정전의 동쪽에 자리한 정면 6칸, 측면 4칸의 부속 전각이다. 온돌이 시설되어 있어서 주로 봄에 사용했다. 그 때문에 궁궐의 온돌 시설을 살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었다. 전각이 세워진 뒤 불탔다 중건되는 과정은 사정전과 동일하나 만춘전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되어 주춧돌만 남은 적이 있었다. 1988년 원 자리에 건물이 복원되었다.

천추전 : 사정전의 서쪽에 자리한 정면 6칸, 측면 4칸의 부속 전각이다. 만춘전과 마찬가지로 내부에 온돌이 시설되어 있어서 주로 가을과 겨울에 사용했다. 1452년(문종 2년) 5월 14일 문종이 37세를 일기로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 궐내각사 권역

수정전 : 근정전 서쪽에 자리한 전각이다. 월대 위에 있는 정면 10칸, 측면 4칸으로 된 꽤 큰 건물로, 궁궐에 부속된 관청이 밀집한 궐내각사 권역의 중심이었다. 세종때는 집현전이 있던 곳이었으나,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1867년(고종 4년) 중건했고, 고종때는 군국 기무처와 내각이 이곳에 있었다. 주변에 있던 2백여 칸의 다른 궐내각사 건물들은 일제강점기때 모두 철거되어 현재는 수정전만 남아있다. 2차 복원 정비 사업의 2단계가 진행될 2026년~2034년에 주변 건물들을 복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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