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의 내조 구역 중 오늘은 침전 권역, 연침 권역, 그리고 동궁 권역에 있는 건축물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침전 권역에 있는 건축물로는 강녕전, 연생전, 경성전, 연길당, 응지당, 교태전, 아미산, 흠경각, 함원전, 소주방이 있고 연침 권역에 있는 건축물로는 자경전, 자경전 꽃담, 자경전 십장생 굴뚝, 제수합이 있으며 동궁 권역의 건축물로는 자선당, 비현각, 계조당이 있다.
경복궁 내조의 침전 권역 내 건축물
강녕전 : 임금의 침전으로 사용한 정면 11칸, 측면 5칸의 전각으로 건물 앞에는 월대가 시설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강녕전의 소침인 연생전·경성전·연길당·응지당이 있다. 강녕전진찬도(康寧殿進饌圖)에는 강녕전과 4채의 소침이 회랑을 통해 서로 이어진 것으로 나오지만 현재는 연결되어 있지 않다. 다만 소침의 툇마루 등을 통해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1395년(태조 4년)에 세워질 때 정도전이 명명한 전각 중 하나이며, 1553년(명종 8년) 화재로 불탔다가 1년 뒤에 중건했지만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터만 남았다가 흥선대원군이 다시 중건했다. 고종 때 중건된 강녕전은 1917년 11월10일 창덕궁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내전 권역이 소실되자 1920년 이건되어 창덕궁 희정당이 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1995년에 복원했다.
연생전 : 강녕전의 소침 중 하나로 정면 7칸, 측면 4칸이고 1395년(태조 4년) 경복궁 창건 때 제후 3침의 제도에 따라 강녕전 오른쪽에 동소침으로 지어졌으며, 서쪽에 있는 서소침인 경성전과 마주보고 있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새로이 연길당을 지어 회랑을 통해 강녕전과 연결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분리되어 있다. 1917년 11월 10일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 복구를 위한 자재로 활용하기 위해 철거되었다가 1995년에 복원했다.
경선전 : 강녕전의 소침 중 하나로 정면 7칸, 측면 4칸이고 1395년(태조 4년) 경복궁 창건 때 제후 3침의 제도에 따라 강녕전 왼쪽 서소침으로 지어졌으며, 동쪽에 있는 동소침인 연생전과 마주보고 있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새로이 응지당을 지어 회랑을 통해 강녕전과 연결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분리되어 있다. 1917년 11월 10일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 복구를 위한 자재로 활용하기 위해 철거되었다가 1995년에 복원했다.
연길당 : 흥선대원군이 새로 영건한 강녕전의 소침 중 하나로, 강녕전 오른쪽에 있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전각이다. 과거에는 강녕전과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분리되어 있다. 1917년 11월 10일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 복구를 위한 자재로 활용하기 위해 철거되었다가 1995년에 복원했다.
응지당 : 흥선대원군이 새로 영건한 강녕전의 소침 중 하나로, 강녕전 왼쪽에 있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전각이다. 과거에는 강녕전과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분리되어 있다. 1917년 11월 10일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 복구를 위한 자재로 활용하기 위해 철거되었다가 1995년에 복원했다.
교태전 : 정면 9칸의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 뒤쪽에 있는 왕비의 침전. 강녕전과 마찬가지로 지붕에 용마루가 없다. 부속 전각으로 동쪽에는 원길헌(元吉軒), 서쪽에는 함홍각(含弘閣), 동북쪽에는 아미산을 바라볼 수 있는 누마루인 건순각(健順閣)이 있다. 고종 때 중건된 교태전은 1917년 11월 10일 창덕궁 대화재로 내전 권역이 소실되자 1920년에 이건되어 창덕궁 대조전이 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1995년에 복원했다.
아미산 : 경회루의 연못을 팔 때 나온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으로 교태전의 뒷편에 있다. 백두대간과 한북정맥을 경복궁까지 이어서 교태전에서 낳는 왕세자와 대군들에게 백두산의 기를 주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3단의 화계(花階)로 된 출입구에는 2.6m 높이의 육각형 벽돌 굴뚝 4개가 있는데, 교태전의 온돌방에서 나오는 연기를 배출하기 위해 만들었으며, 각 굴뚝의 여섯 벽면에는 다양한 길상문으로 아름답게 꾸며 그 예술적 조형미와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 1985년 1월8일 보물 제811호로 지정되었다. 선장문 안쪽의 실제 아미산 영역은 출입불가이며 입구 계단인 아미산 굴뚝 주변도 올라갈 수 없다.
흠경각 : 교태전 서쪽에 자리한 정면 6칸, 측면 4칸의 전각으로 1438년(세종 20년) 세종대왕이 장영실에게 명해 지은 일종의 천문 관측소이다. 이곳에는 각종 천문 관측 기구가 있었으나 1553년(명종 8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중건했고,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불탄 뒤 고종 때 중건했지만 일제강점기인 1917년 11월 10일 창덕궁의 내전 일곽이 화재로 전소되자 여기에 들어갈 자재로 활용하기 위해 철거되었다가 1995년 복원했다.
함원전 : 교태전 서쪽에 자리한 정면 6칸, 측면 4칸의 전각. 세종대왕이 내불당(內佛堂)을 설치해 불사를 거행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1888년(고종 25년) 중건했지만 일제강점기인 1917년 11월 10일 창덕궁의 내전 일곽이 화재로 전소되자 여기에 들어갈 자재로 활용하기 위해 철거되었다가 1995년 복원했다.
소주방 : 동궁의 북측과 자경전의 남측 사이에 있으며, 궁궐 내 음식물을 보관·조리·제공하는 식생활 공간으로, 수라상을 비롯해 왕실 잔칫상 등을 만드는 궁중 요리원이다. 대전(大殿)의 음식을 만들던 곳이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상궁들이 음식을 하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1395년 경복궁 창건 이후 궐내 제반 시설을 정비하면서 건립되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고종 2년(1865년) 경복궁 재건 시 다시 지어졌다. 일제 강점기인 1915년 조선 물산 공진회가 개최되면서 여러 전각들과 함께 헐려 없어졌다. 2015년 2월 16일 복원했다. 2015년 5월 8일부터 10일까지 개방, 궁중 음식을 시연하는 행사를 열었다. 2018년 현재, 궁중 다과와 전통차를 판매하는 찻집으로 개수되어 운영 중에 있다. 굳이 차를 마시지 않더라도, 경복궁 내에서 별도의 허가 없이 실내에 들어 가 볼 수 있는 유일한 전각이라는 점에서도 경복궁을 방문한다면 한 번쯤 들러 볼 만하다.
경복궁 내조의 연침 권역 내 건축물
자경전 : 원래 이 자리 근처에는 자미당(紫薇堂)이 있었으나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1867년(고종 4년)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헌종의 어머니이자 고종의 양어머니인 대왕대비 조씨를 위해 지었지만 1873년(고종 10년) 화재로 소실되어 1888년(고종 25년) 중건했다. 동쪽 정면은 정면 10칸, 측면 4칸의 자경전이고, 여기에 정면 1칸, 측면 2칸의 청연루(淸燕樓)와 정면 6칸, 측면 2칸의 협경당(協慶堂)이 맞닿아 있으며, 서쪽 뒤쪽으로 정면 2칸, 측면 6칸의 방실이 연결되어 있다. 경복궁에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시대부터 남아있는 연침 건물이며, 1985년 1월8일 보물 제809호로 지정되었다.
자경전 꽃담 : 자경전 서쪽에 있는 담장으로 황토색 전돌과 흰 삼화토를 사용해 만든 벽면에 각종 길상문자와 길상도안, 기하학적 문양을 장식했다. 서울특별시가 '서울 10대 대표색'을 선정하면서 이 꽃담의 색깔을 '꽃담황토색'으로 명명해 포함시켰다.
자경전 십장생 굴뚝 : 자경전 내부의 온돌방과 연결된 여러 개의 굴뚝을 하나로 모아 만든 굴뚝이다. 전돌을 쌓아 만든 담장 벽면의 중앙에는 장수를 의미하는 소나무·거북·사슴·불로초 등의 십장생과 그 밖의 각종 길상을 상징하는 동물들을 배치해 자경전의 주인인 대왕대비 조씨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미학적 가치가 뛰어나 1985년 1월 8일 보물 제810호로 지정되었다. 자경전과 합쳐서 지정된 게 아니라 굴뚝만 독립적으로 지정된 것이다.
제수합 : 경복궁의 건물이다. 자경전의 동북쪽에 있다. 경복궁의 전각이지만, 현재는 국립민속박물관 경내에 있으며 용도는 확실하게 모른다. 용도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자세하게 알 수 없다.자경전이나 만경전의 별당이라는 의견과, 내전에서 일하는 나인들의 거처라는 의견이 있다. 또한 왕실의 친인척들이 궁에 올 때 대기소로 썼던 곳이라는 견해도 있다.1395년(태조 4년)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는 없었고, 1865년(고종 2년)에 창건되었다. 고종 때 제수합은 지금처럼 건물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주변에 행각과 문이 있어 하나의 독립된 영역을 형성한 전각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행각과 문이 헐려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제수합 본채는 살아남았다.2004년 보수공사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이 때 땅에 묻혀있던 기단을 발굴하여 복구하였다.경복궁 1차 복원 공사 5단계(2001 ~ 2009)에 제수합의 행각이 복원될 예정이였지만 자료 부족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경복궁 내조의 동궁 권역 내 건축물
자선당 : 1427년(세종 9년) 세자의 생활 공간으로 지어진 정면 7칸, 측면 4칸의 동궁(東宮)으로 세자였던 문종이 단종을 얻고 아내 현덕왕후 권씨를 잃은 곳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고종 때 중건되어 순종이 세자로서는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지냈다. 아관파천 이후 주인을 잃었으며 1914년 오쿠라 기하치로가 일본으로 뜯어간 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불타 기단만 남은 채 방치된 유구가 1995년 한국으로 반환되었다. 원래는 반환된 유구를 복원에 사용하려 했지만 훼손이 심각해 건청궁 뒤쪽에 갖다놓았는데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1999년 복원한 자선당도 원래의 모습과 차이가 있다.
비현각 : 1427년(세종 9년) 세자의 공부방 겸 집무실로 지어진 정면 6칸, 측면 2칸의 전각이다. 자선당의 오른쪽에 자리해 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고종 때 중건되었지만 일제강점기인 1917년 11월 10일 창덕궁의 내전 일곽이 화재로 전소되자 여기에 들어갈 자재로 활용하기 위해 철거되었다가 1999년에 복원했다.
계조당 : 계조당은 여러 행사 때 왕세자가 축하를 받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고 한 때 빈 터로 남아있었으나 "경복궁 2차 복원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복원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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