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후원(昌德宮後苑) 또는 비원(祕苑)은 창덕궁 북쪽에 창경궁과 붙어 있는 한국 최대의 궁중 정원이다. 궁원(宮苑), 금원(禁苑), 북원(北苑), 후원(後園)으로도 불린다. 조선 시대 때 임금의 산책지로 설계된 후원으로 1405년(태종 5년)10월 에 별궁으로 지은 것인데, 이후 1592년(선조 24년)에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지고, 1609(광해군 1년)에 중수했다. 많은 전각, 누각과 정자가 신축, 보수되어 시대에 따른 특색을 보여 준다. 정원에는 왕실 도서관이었던 규장각과 더불어, 영화당(映花堂), 주합루, 서향각(書香閣), 영춘루(迎春樓), 소요정(逍遼亭), 태극정(太極亭), 연경당(演慶堂) 등 여러 정자와 연못들, 물이 흐르는 옥류천이 있고, 녹화(綠化)된 잔디, 나무, 꽃들이 심어져 있다. 또한 수백 종의 나무들이 26,000그루 넘게 심어져 있고, 이 중 일부는 300년이 넘은 나무들도 있다. 창경궁을 합한 창덕궁의 총면적 약 0.674km2(20만 3769평) 중 창경궁은 약 0.177km2(5만 3600여 평)이고, 비원은 약 0.205km2(6만 1937평)이다. 창덕궁 후원은 1997년에 창덕궁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글에서는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 일대와 연경당 권역내 건축물에 대해 알아보겠다.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 일대 내 건축물
부용정 : 부용지의 정자로 정면 5칸, 측면 4칸, 배면 3칸의 十자형 전각이다. 배면 한 칸은 연못에 높은 석주(石柱)를 세우고 수중누각(水中樓閣)이 되게 하여 수상과 지상의 조화를 추구했다. 1707년(숙종 33)에 택수재라는 명칭의 정자였으나 1792년(정조 16)에 개축하면서 명칭 또한 지금의 부용정으로 고쳤으며 1795년(정조 19)에 있던 혜경궁 홍 씨의 회갑을 맞아 종친들과 신하들을 초청해 낚시와 뱃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영화당 : 부용지 동쪽에 있는 전각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이익공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광해군 때 처은 건립되었으나 현재의 전각은 1692년(숙종 18)에 재건된 것이다. 부용정 일대에서 내력이 제일 오래된 건물이다. 정조 이전까지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개최하거나 활을 쏘는 곳이고 이후 시험장으로 활용되었다. 영화당 앞마당은 현재 모습과는 달리 창경궁 춘당지 바로 앞까지 넓게 열린 공간이었는데, 이 마당을 '춘당대春塘臺'라 불렀다. 공간이 매우 넓어 문과/무과시험 가리지 않고 왕이 직접 행차하여 과거시험을 지켜보고 관장했으며 이곳에서 치는 과거시험을 "춘당대시春塘臺試"라고 부르기도 했다.
주합루 : 창덕궁 부용지의 전각 중 하나로 정면 5칸, 측면 4칸, 팔작지붕 형식의 중층 전각으로 1776년(정조 원년)에 건립되었다. 경훈각처럼 층마다 명칭이 달랐다. 주합루의 경우 2층은 주합루, 1층은 어제각이라 했으며 본래 역대 국왕들의 글과 어필을 보관하던 곳으로 이후 규장각으로 개명되었다. 정조가 인재들을 양성하고 자신의 치세를 보필하는 장소였으나 일제강점기 당시 연회장으로 활용되는 등의 수난을 겪었다. 주합루 앞을 둘렀다가 사라진 취병(翠屛)은 최근 재현되었다. 주합루로 들어가는 문인 어수문은 취병과 함께 매우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축물로, 조선시대에 거의 사라진 건축 의장을 풍부하게 가진 귀중한 사례다. 어수문 양쪽의 소문 형태도 독특하거니와 어수문 내외부에는 정교한 조각을 둘러놓았다.
서향각 : 부용지 권역의 전각 중 하나로 주합루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8칸, 측면 3칸의 전각으로 주합루에 보관된 각종 도서, 어진과 어필 등을 말리던 포쇄소였다. 포쇄란, 좀스는 것과 습기가 스며 망실되는 것을 막고자 햇볕에 내어놓고 말리는 것을 의미한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 총독부에 의해 양잠소로 변질되어 한동안은 뜬금없이 누에 치는 곳으로 안내가 버젓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서향각 본래 기능대로 안내가 되고 있다. 다만, '친잠권민'(왕실에서 친히 누에를 치는 것은 백성들에게도 권해야 한다)이라는 게판은 현재까지 걸려 있다.
희우정 : 주합루 뒤편에 자리잡은 정면 2칸의 작은 전각으로, 왕의 열람실이었다고 한다. 1645년(선조 23)에 초당(草堂)으로 세웠으며 원래 이름은 취향정(醉香亭)이었다. 1690년(숙종 16)에 가뭄이 심하여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려 가뭄이 해소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붕을 기와로 바꾸고 희우정이라 개칭했다.
천석정 : 주합루 동북쪽 언덕 위에 있는 ㄱ자 형태의 정자로 누마루에 제월광풍관(霽月光風觀)이란 현판이 걸려 있어 제월광풍관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순조의 세자였던 효명세자가 학문을 닦았던 곳이었다.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 권역 내 건축물
연경당 : 창덕궁 후원에 위치한 전각으로 정면 6칸, 측면 2칸의 단층팔작지붕이다. 1828년(순조 28)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기간에 순조의 진작례를 올리기 위해 진장각(珍藏閣) 옛터에 세워져 당시 효명세자의 왕권강화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전각이다. 궁궐의 다른 전각들과 달리 궐내에서 유일하게 민가 형식으로 지어졌는데, 사대부가를 모방했다고 하지만 일반적인 사대부가의 상한선이 99칸인 것에 비해 연경당은 그 규모가 120칸에 달해서 일부에서는 왕자나 공주의 사저인 궁가(宮家)를 모방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사대부가 형식의 전각이지만 안채와 사랑채가 합쳐져 있어 마당을 좌우로 가른 담을 기준으로 공간을 구분하며, 안채의 경우 일반적인 안채와 달리 부엌이 존재하지 않고 별채에 있다. 1865년 고종 때 새로 증축되거나 권역이 넓어져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참고로 효명세자의 사후 순조가 말년에 보낸 곳이다.
선향재 : 사랑채 동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정면 7칸, 측면 2칸이다. 1865년에 연경당을 넓히면서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주로 서재나 손님을 응접하는 접대실의 역할을 했다. 경복궁의 집옥재처럼 측면을 청나라 풍 양식의 벽돌로 세웠고 마루 앞에는 서양식 차양 시설이, 지붕은 기와가 아닌 동판으로 갖춰져 있어 이국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특이한 점으로는 일반적인 건물이 남향인데 비해, 선향재는 동향이어서 습기가 많이 차고 태양열을 제대로 배출해 주지 못하므로 책을 보관하는 서재로는 말짱 꽝이었다고 한다. 이에 온돌을 통해 습기를 빼주어야 했다고 한다.
농수정 : 선향재 뒤에 위치한 정자로 장대석 기단 위에 세워진 정, 측면 1칸의 익공계 사모지붕집형태를 하고있다. 선향재와는 동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용도 또한 불명이다. 1886년(고종 23) 고종황제와 왕세자 순종황제가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한 사진첩이 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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