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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21

창경궁 내조 건축물의 역사와 구조 [2] 통명전은 창경궁의 침전이다. 사실 창경궁은 대비 등 왕실 가족들의 거주 공간 확보를 목적으로 지어서, 왕실 구성원들은 다른 궁궐에 있을 때와 다르게 비교적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건물을 사용했다. 그래서 창경궁 내전 건물의 경우, 전각의 주인을 뚜렷하게 구분하기 모호하며 통명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여러 기록을 볼 때, 주로 왕비와 대비 등 왕실 내 최고위급 여성들의 공간으로 많이 사용한 듯하다. 창경궁의 내전 전각들 중 위상이 가장 으뜸이었다. 《궁궐지(宮闕志)》에서 ‘통명전은 창경궁의 내정전(通明殿卽昌慶宮內正殿)’으로 표기한 것과, 영조가 통명전을 ‘내전의 법전(法殿)’이라 남긴 글, 그리고 《통명전 중건 상량문》에 ‘동쪽에 창경궁이 조성된 이후 내전은 통명전보다 높은 전각이 없다’라고 적혀.. 2023. 6. 14.
창경궁 내조 건축물의 역사와 구조[1] 창경궁 내조 영역 내 건축물로는 경춘전, 환경전, 통명전, 양화당, 영춘헌, 집복헌이 있다. 경춘전은 창경궁의 침전이다. 창경궁은 대비들과 왕실 가족들의 거주 공간 확보를 목적으로 지었기 때문에, 왕실 구성원들은 다른 궁궐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비교적 자유롭게 건물을 사용했다. 그래서 창경궁 내전 건물의 경우, 전각의 주인을 뚜렷하게 구분하기 모호한 점이 있으며 경춘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여러 기록 등을 볼 때, 대체적으로는 왕비와 대비 등 왕실 내 최고위급 여성들의 공간으로 많이 사용된 듯하다. 이름은 성종 시기 창건할 때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이던 서거정이 지었다. ‘경춘’은 글자 그대로 풀면 ‘햇볕(景) 따뜻한 봄(春)’이라는 뜻이다. 순조는 후술할 《경춘전기》에서 ''경(景)'은 큰 것.. 2023. 6. 13.
서울의 대표 관광지 창덕궁의 역사와 구조와 건축물 서울의 대표 관광지인 창덕궁에 역사와 구조와 건축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창덕궁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 시대 궁궐로 동쪽으로 창경궁과 맞닿아 있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서 조선 시대에는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東闕)이라 불렀다. 창덕궁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중요한 고궁이며, 특히 창덕궁 후원은 한국의 유일한 궁궐후원이라는 점과 한국의 정원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1997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은 고려 시대 궁궐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개성의 송악산의 만월대처럼 자연 지형에 맞추어 산자락에 지어졌다. 보통 궁궐은 인위적으로 존엄성과 권위를 드러내도록 건축되지만 창덕궁은 이러한 얽매임 없이 북악산.. 2023. 6. 7.
창경궁의 역사와 건축 창경궁은 (昌慶宮)은 서울특별시에 있는 궁궐로 조선 성종(1483년) 때에 건축하였다. 창경궁은 서쪽으로 창덕궁과 붙어 있고 남쪽으로 종묘와 통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또, 고려의 국새를 넘겨받은 수창궁(壽昌宮)의 청심정(淸心亭)과 동일한 이름의 정자를 가까이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창덕궁과 함께 동궐 (東闕)이라고 하였는데,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붙어 있으면서 서로 보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창경궁의 원래 이름은 수창궁(壽昌宮)과 매우 유사한 수강궁(壽康宮)으로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성종 14년(1483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하여 새로 중건하고 이름을 창경궁으로 바꾸었다. 창경궁은 숙종이 인현왕후를 저주한 장희빈을 처형한 일과 영조가 사도세.. 2023. 6. 6.
창덕궁 후원 옥류천 일대 와 애련정 권역 내 건축물 창덕궁 후원에 있는 정자인 존덕정 북쪽으로 깊숙한 곳에 옥류천이 있다. 옥류천의 계류(溪流)는 북악에서 동쪽으로 내려오다 응봉 기슭에서 흐르는 물과 인조(仁祖)가 친히 파서 만든 어정(御井)에서 물이 합쳐져 흐르는 시내이다. 옥류천 일대의 정자인 태극정(太極亭), 취규정(聚奎亭) 등도 인조 때 대부분 조성되었다. 옥류천 큰 바위 소요암(逍遙巖)에 인조는 어필로 ‘玉流川(옥류천)’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이 글자는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열성어필(列聖御筆)」에 인조 글씨로 남아 있다. 인조는 1636년 가을 옥류천의 바닥돌을 깎아 계곡물이 흘러오게 만들고, 물이 암반을 둥글게 휘돌아 흘러서 소요정(逍遙亭) 앞에서 폭포가 되어 떨어지게 했다. 그 모습은 경주 포석정의 유상곡수(流觴曲水)를 떠올리게 한다. .. 2023.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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